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대통령행정실장은 이날 일본과 영유권 분쟁지역인 쿠릴열도의 이투룹(일본명 에토로후)을 특별기로 방문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장관급 인사가 쿠릴 4개섬을 방문한 것은 거의 2년 만의 일이다. 이바노프 실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번 방문은 쿠릴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실효지배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은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이바노프 실장이 현지 주민과의 대화에서 오는 2016∼2025년 쿠릴 4개섬을 포함한 쿠릴열도의 사회기반 정비에 민간투자 등 총 640억 루블(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하는 ‘쿠릴열도 사회경제발전계획’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섬에 매장된 희소금속인 레늄을 채굴할 가능성을 조사할 것이라고 부언했다.
쿠릴열도 영유권을 주장해 온 일본은 강력 반발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국민의 감정을 거스르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러시아 정부에 엄중히 항의했다.
이날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대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하며 양국 간 공방은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서면 국무회의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신규 무기수출과 무기기술 제공을 제한하고, 러시아의 5개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회, 주식을 포함한 증권 발행을 금지하는 추가 제재를 승인했다. 제재 대상 금융사는 스베르방크, 가스프롬방크, 로스셀호즈방크(러시아농업은행), VTB(대외무역은행), 브네슈에코놈방크(대외경제개발은행) 등이다. 일본 정부는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우리나라로서는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3월부터 순차적으로 비자면제협정 협상 중단, 비자발급 금지, 자산동결 등 대러 제재를 벌여 왔다.
이에 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의 대러 새 제재에 실망했다”면서 “일본 정부의 결정은 지난 5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접촉그룹 회담(다자회담)에서 이루어진 우크라이나 동남부 휴전 합의에 비추어볼 때 비논리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본이 대러제재의 단일대오를 강조하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러일관계는 표면적으로 갈등하면서도 물밑에서 대화를 추구하는 양상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회담을 하자고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미일관계 등을 감안해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을 통한 쿠릴열도 반환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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