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3건. 발명왕 에디슨이 평생 동안 얻은 미국특허다. 국제특허는 1,293건에 이른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에디슨 자신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비결은 여기에 있다. ‘시스템.’ 에디슨 발명 시스템의 핵심은 연구소. 1876년 3월25일 뉴저지주 멘로파크(Menlo Park)에 산업연구소를 세우고 각 분야 전문가 25명을 불러들였다. 과학기술 실용화를 위한 민간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연구와 실험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에디슨은 학계의 냉소를 이렇게 맞받아쳤다. ‘열흘에 한 건씩 간단한 발명, 6개월에 한 건씩 굉장한 발명을 해낼 것이다.’ 장담은 현실로 나타났다. 9년 동안 이 연구소가 등록한 특허는 400여건. 축음기와 백열전구ㆍ영사기ㆍ확성기ㆍ복사기ㆍ전기퓨즈ㆍ전동차 등 에디슨의 대표적 발명품이 여기서 나왔다. 성공요인은 집적화. 연구원 주택단지까지 만들어 주 80시간씩 연구와 실험에 매달렸다. 연구원들이 1%의 성과를 위해 99%의 노력을 쏟아 붓는 체제가 바로 멘로파크연구소였다. 문제는 멘로파크연구소의 마법이 도중에 끊겼다는 점. 1887년 규모가 10배 확장된 웨스트오렌지로 이전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꿨지만 에디슨의 무리한 광산투자 후유증으로 발명 중심권에서 밀려났다. 짧은 기간만 존속했던 멘로파크연구소는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19세기 말부터 미국과 유럽의 유력 기업들은 잇따라 산업연구소를 세웠다. 멘로파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경제사가 존 스틸 고든은 이런 평가를 내렸다. ‘멘로파크연구소는 에디슨의 최고 발명품이며 20세기 자본주의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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