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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순망치한과 한·일관계

<脣亡齒寒>

수도권에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요즘 하루하루 공장을 돌리느라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다. 그 자신도 30여 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IMF위기 등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지금처럼 어려울 때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폴리아미드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자동차회사 등에 납품해왔지만 대지진 사태로 반입 자체가 끊기는 바람에 납품기일을 맞추기 힘들어졌다. 양국 부품 등 밀접한 분업구조 그는 수소문 끝에 프랑스의 한 업체에서 원자재를 들여오기로 했지만 값비싼 항공료까지 부담하느라 적자수출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는 "납품기일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주문이 끊길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일본 거래처의 공급이 재개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일본 대지진 여파로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일본과의 밀접한 산업관계를 새삼 인식했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다. 이는 기업규모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이다. 평소 일본과 거래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뜻하지 않게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만큼 양국이 밀접한 분업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일본 지진 사태 초기만 해도 증권가 일각에서는 한국이 입을 반사이익을 거론하며 일부 주식에 대해 매수세가 몰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잃고 말았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설치된 지진피해 대책반에는 전국 각지 기업체로부터 부품을 구하지 못해 납품기일을 못 맞춘다거나 수출에 차질을 빚는다는 호소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 수출업체들은 일본으로 선적이 중단되는 바람에 자금난에 몰려 부도직전에 이르는 사례도 나오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옛말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지만 오랜 역사를 이어져 온 한일관계 특수성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태 초기만 해도 반사이익까지 거론해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점차 일본 국민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의 아픔을 같이하는가 하면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성금을 모은다거나 복구를 기원하는 등 격려 메시지가 많아지고 있다. 다들 남의 아픔을 내 것처럼 여기며 글로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도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성숙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우리 기업들도 일본에 성금을 기탁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현지 거래처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자세를 보여 일본 측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모름지기 남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준다면 조금이라도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새 경제협력 구축 계기로 삼길 양국 경제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분업구조를 가진 만큼 이번 사태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경제협력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아울러 일본 지진 같은 대형재난이 터질 때마다 세계 각국의 정부나 민간 차원의 공조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간에게 무력감만 안겨주는 자연재해가 잇따르는 터에 개별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활로 모색에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몇 해 전 일본 여행길에 고베항을 찾았을 때 고베 대지진 당시 부서진 잔해를 고스란히 보관해 놓은 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고배 시민들은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해 기울어진 가로등과 휘어진 크레인 등을 복구하지 않고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고 한다. 부디 일본 국민들이 하루빨리 대지진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 과거에도 그래 왔듯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저력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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