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무신 집권기는 근대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권?'
12세기 고려는 그 찬란한 문화가 보여주듯 가장 성숙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럼에도 한국사에서 고려시대, 그 중 특히 100여년에 이르는 무신 집권기는 마치 서양의 중세 암흑기처럼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 시기는 변칙과 예외로 치부됐고, 해석 또한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해외 한국학의 권위자로 미국 하와이대에서 한국학연구소장을 지낸 외국인 학자인 저자는 12세기 한국 중세의 무신 집권기를 달리 보며 고려역사의 재인식에 도전했다.
한국사에서 독특한 시기로 꼽히는 고려의 무신 집권기는 문신통치가 무신 지배에 길을 내 준 고려의 과도기였다. 정중부가 일으킨 무신의 난을 시작으로 열린 무신의 시대는 왕을 허수아비로 전락시키고 권력을 무신정권의 손에 넣게 했다. 농민·천민 봉기가 일어났고, 무신 내부 살육도 횡행했으나 최충헌이 잡은 최씨 정권은 60년이나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저자는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박정희 정권을 관찰하면서 무신 정권과의 연결점을 모색했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와 최충헌 모두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고,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한계 속에서 문치를 중시한 공통점을 지녔다"고 말한다. 책은 무신정권에 대한 기존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적으로 어떤 발전을 이뤘는가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역사 해석의 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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