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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8월 23일] 각본없는 인생드라마, 올림픽
입력2008-08-22 17:35:53
수정
2008.08.22 17:35:53
사람들은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에는 한계가 엄격히 제시돼 있다. 한계는 모든 선수들에게 동일한 환경을 제시해 준다. 축구는 전ㆍ후반 90분, 야구는 9번의 공격과 수비, 육상은 동일한 조건의 트랙 등으로 말이다. 하나의 게임이 벌어지는 시간은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하게 부여된다.
같은 시간 안에 한 선수가 점수를 더 따고 혹은 잃게 됨으로써 이후의 결과는 달라진다. 공평함 속에 숨어 있는 다른 미래,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를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인생 자체가 각본 없는 드라마이다. 스포츠가 드라마와 닮았다면 그것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길게는 100년 짧게는 10년 정도 겪는 인생의 드라마가 스포츠 경기에 압축돼 있다. 누군가는 4년여간의 노력을 메달로 보상받지만 다른 누군가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한 번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긴장ㆍ슬픔ㆍ기쁨ㆍ괴로움ㆍ분노 등 인간의 격렬한 감정들이 스포츠 경기 안에 농축돼 있다. 시간이 흘러 내일이 되면 숫자로 낙인찍히겠지만 “라이브(live)”라는 자막 아래 펼쳐지는 상황들은 미지수이기에 긴장된다. 스포츠 경기 관람의 매력 중 하나라면 바로 이 미결정성이 주는 짜릿한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바벨을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의 모습과 상대 선수를 들어 메치는 유도 선수의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영화관의 관객처럼 게임을 하는 선수의 모습만을 볼 수 있다. 경기가 끝난 후 많은 언론사들이 승리의 주역들을 취재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경기장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이야기들, 숨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서 말이다.
올해 열린 베이징 올림픽은 선수와 경기를 둘러싼 변화를 직감하게 한다. 우선 스포츠 관람객,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의 재구성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올림픽이 있을 때면 관습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누군가 금메달을 따면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가 선수의 고향에 가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고 준비했던 자료 화면을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상황들이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사람들의 관심이 무조건 금메달리스트에게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 은메달을 딴 남현희 선수나 아예 메달을 따지 못했던 이배영 선수에게 쏟아지는 관심도 그렇다.
많은 스포츠 영화들은 선수와 그들이 뛴 경기를 감동적으로 재구성한다. 실제 경기를 허구화한 스포츠 영화들이 관객에게 관심을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는 경기장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에서 ‘선수’들은 이성을 만나 사랑하고 가족안에서 부대끼고 갈등하는 ‘인간’으로 재조명된다.
등번호 몇 번 혹은 유니폼 색깔로 구분되던 선수들은 나름의 사연과 역사를 통해 구체화된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포츠의 격렬한 감정은 감동으로 깊어진다. 올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이러한 이유로 관객들의 환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관람객들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창조자에 가깝다. 네티즌과 동일한 관람객들은 경기를 보고 바로 감상평을 올리고 토론을 한다. 관심 있는 선수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직접 자신의 소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 4년여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개인 미디어 열풍이 스포츠와 그것을 접하는 개인의 관계도 바꿔 놓았다. 관람객은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짜릿함을 스포츠 경기에서 얻는다고 말한다. 올림픽은 그런 점에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약간의 망각을 제공하는 위안임에 분명하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스포츠와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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