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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타협으로 가는 길] 장하준 英케임브리지대 교수 특별인터뷰

"국가 경영 틀, 50년 100년 내다보고 짜야"<br>우리사회 이미 성장 임계치에 근접<br>새로운 환경 못만들면 도약 힘겨워


[사회 대타협으로 가는 길] 장하준 英케임브리지대 교수 특별인터뷰 "국가 경영 틀, 50년 100년 내다보고 짜야"우리사회 이미 성장 임계치에 근접새로운 환경 못만들면 도약 힘겨워 케임브리지=박태준 기자 june@sed.co.kr 일찍이 한국 사회에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만만치 않은 화두를 던졌던 장하준 교수를 만나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장 교수가 올해 초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의 미국판을 내면서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하느라 약속을 잡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인터뷰 당일에도 런던 시내에서 케임브리지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M11도로에 진입했지만 영국답지 않게 화창한 날씨 탓인지 잇따른 교통사고로 도로가 막혀 가뜩이나 낯선 런던 근교의 시골길을 마냥 달려야만 했다. 약속시간을 조금 지나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 도착하니 장 교수는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아줬다. 서너 평 남짓한 연구실은 사방에 수많은 원서가 가득 쌓여 있어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상황은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양보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되겠어’라는 의심만 품고 있으면 결코 타협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장 교수는 인터뷰 내내 “이는 우리 사회의 ‘대안’이 아니라 ‘숙명’”이라며 사회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이미 현재 단계에서는 성장임계치에 근접,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면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힘겹다는 경고다. 사실 장 교수의 사회 대타협론은 좌우파 모두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아왔다. 좌파는 재벌친향적이라는 이유로, 우파는 시장경제의 뿌리를 흔들어댄다는 이유로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장하준의 경고는 오싹하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던 세계적 석학 놈 촘스키의 말이 실감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과거의 잘못된 모델을 수정하겠다고 다양한 어젠다가 나왔습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재벌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고 시장주의자들은 그때 흐름에 맞춰 시장개방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의 결과는 실망스럽지 않았습니까. 성장도, 투자도 안 되고 고용도 불안해졌습니다. 대타협을 얘기하는 기조에는 이 같은 분석이 깔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왜 우리나라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냐’는 거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장 교수는 “(사회 대타협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본시장과 금융제도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자유화되면서 인수합병(M&A)이 쉬워졌습니다. 외환위기를 틈타 국민경제의 이익보다 금융 이익을 우선시하는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되자 기업들은 단기 이윤을 많이 내야 했고 이윤 중에서도 배당률을 높여야 했습니다. 단기 이윤을 내려다 보니 투자는 옛날보다 줄었고 고용도 안 했습니다. 고용을 해도 비정규직 위주로 했고 인건비가 비싸질 듯하면 내보내니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가 양산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투자를 못하고 국민도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는 현실’이 바로 사회적 대타협을 필요로 하는 충분한 여건이라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인터뷰 내내 비유와 사례를 섞어가며 우리 사회의 현안을 명쾌하게 짚었으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간간이 “내 주장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이라며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자신에 찬 목소리로 사회 대타협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이어갔다. “지금 새 정부는 규제를 더 완화하면 투자를 잘할 거라고 얘기하지만 과거에 투자를 훨씬 많이 할 때도 지금보다 규제가 더 심했습니다. 규제완화도 중요하지만 2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도장 100개를 받더라도 공장을 열지 않겠습니까. 참여정부 때는 과거에 투자 과잉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교수는 새 정부 출범으로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도 ‘규제완화만이 최선의 방책은 아니다’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규제를 강화하든 완화하든) 두 가지 다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경영권 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거나 자본시장 통제를 강화해 기업들에 선물을 주고 국민들도 기업들에서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합니다. 서로 간의 안정장치를 맞교환해야 우리 경제의 활력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기업은 경영권 문제만 해결될 경우 다른 경제주체들과 타협하려 할 것인가. “우리가 백지에다 그림을 그리면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지만 지금 재벌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그거(경영권 안정) 딱 하나뿐입니다. 국민들이 그거 하나를 쥐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틀을 짜보자는 거지요. 경영권에 대한 집착이 있고 아쉬운 게 그거밖에 없기 때문에 그 카드로 협상하자는 겁니다.” 한마디로 기업인들에게 경영권 위협을 느끼지 않고 안정된 사업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보다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성사시킬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히려 이런 정부가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 닉슨이 해냈습니다. 닉슨이 확실한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에 다른 세력이 동의한 겁니다. 닉슨이 좌파적이었다면 꿍꿍이는 없을까 의심해 다른 정치세력이 동의하지 않았을 거예요. 도리어 반대쪽에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지요. 또 세계에서 처음으로 복지제도를 만든 사람이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노조를 때려잡았지만 그들의 일부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복지제도를 만들었지요. 새 정부가 친기업적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에 노조와 타협하면 더욱 수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사회 대타협이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어느 주체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기업 자체가 국가 지원을 통해 성장한 측면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방관자가 아닙니다. 어느 나라나 정부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노조나 사용자나 조직률이 높습니다. 경제단체도 하나고 전국적인 노동단체도 하나여서 정부는 방향 조정만 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인단체도 대여섯 곳이고 노동단체도 두 곳인데다 조직률도 낮습니다. 또 국민 여러 분야의 대표도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확실한 조직이 없지요.” 사회 대타협을 결국 정부가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머지 주체들은 종속적으로 따라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장 교수의 답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타협은 노사만의 타협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국민 전체가 관여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과 정부가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측면에서 항상 대립각을 세워요. 정부가 국민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들이 생각해서 옳으며 그냥 옳다고 밀어붙이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틀을 짜야 합니다. 그렇다면 2년이고 3년이고 대화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빨리 하기는 해야겠는데 방해하니까 밀어붙이고 ‘이게 맞는데 넌 왜 잘못 생각하고 있냐. 너 때문에 나라 망하겠다’고 하면서 꾸짖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면 아마 방법이 보일 겁니다. 이번 정부에서 못하면 다음 정부에서 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합니다.” 이날 인터뷰는 예정됐던 1시간30분을 훌쩍 넘겨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그가 꼭 참석해야 할 세미나가 있어 서둘러 끝내야만 했던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장 교수는 마지막으로 “지도자가 당장 결과를 봐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2~3년짜리 단기 성과에 목을 매지 말고 ‘50년, 100년을 내다보면서 국가 경영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충고였다. ● 장하준 교수는 진보·보수 넘어 특유의 경제이론 펴 세계 학계서 주목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한 경제이론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 교수는 2002년 맹목적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펴내 유럽진화정치경제학회로부터 '뮈르달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이 주관하는 레온티에프상의 역대 최연소,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에 오르는 등 '가장 주목받는 소장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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