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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28일] 슈워츠코프 장군


이란 왕정이 궁지에 몰렸다.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한다며 1941년 가을부터 주둔한 소련군 10만명과 영국군 7만명을 먹여 살리느라 가뜩이나 부족한 국가 재정이 거덜났기 때문이다. 영국과 소련의 식량과 석유 징발로 수만명이 굶어죽고 얼어죽자 민란을 우려하던 이란 당국은 공권력을 확충하기로 마음먹고 미국에 도움을 청했다. 이란 경찰을 교육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파견한 책임자는 노먼 슈워츠코프(H Norman Schwarzkopf, Sr) 대령. 1895년 8월28일 독일 이민의 아들로 태어나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1차대전에 참전, 2년 만에 24세의 나이로 대령까지 진급했던 인물이다. 독일계라는 이유로 야전 지휘관을 맡지 못하고 헌병대에 근무했던 그는 종전 후 경찰로 변신, 신설 뉴저지주립경찰의 청장직을 15년 동안 지켰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부인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일에 파묻혔던 그는 2차대전이 터지자 재입대, 1942년부터 6년간 이란의 군과 경찰을 훈련시켰다. 준장 승진 이후 독일 주둔 미군의 헌병참모로 근무하던 그는 1953년 소장 계급장을 달고 이란에 다시 나타났다. 석유 국유화를 단행한 모사데그 총리를 제거하려 미국과 영국 정보부가 꾸민 쿠데타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아작스(Ajax) 작전으로 명명된 쿠데타는 민중의 저항으로 실패하는 것 같았으나 그가 교육시키고 동원한 이란의 군과 경찰이 본격 투입되면서 선거로 뽑힌 모사데그 정권이 무너지고 석유 국유화도 취소됐다. 쿠데타로 강력한 왕권을 다진 팔레비 국왕은 그에게 비밀경찰의 창설과 훈련을 맡겼다. 폐암에 걸린 그가 1958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 33년이 흐른 1991년, 중동지역에는 또 다른 슈워츠코프가 등장했다. 1차 걸프전쟁에서 미군을 지휘한 슈워츠코프 대장이 그의 외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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