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꽂고 드라이버로 세컨드 샷을 하기 전에는 온 그린이 안 되는 홀이 2개나 있었어요." 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LIG클래식 1라운드를 마치고 만난 안신애(20ㆍ비씨카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활짝 웃었다. 이번 시즌 KLPGA투어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안신애는 샷 거리가 길지 않다. 정상급 선수들은 드라이버 샷 평균거리가 260야드를 웃돌지만 상금랭킹 1위 안신애는 230~240야드 정도로 투어 내에서 82위다. 콤플렉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짧은 샷 거리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묻어났다. 올해 하반기 6개 대회에서만 우승 2회와 준우승 3회, 4위 1회의 빛나는 성적을 올린 안신애. 평균타수를 보면 상반기 16위(72.63타)에서 하반기 대회에서는 1위(68.93타)로 뛰어올랐다. 시쳇말로 '그분이 오신 듯한' 갑작스러운 상승세의 비결도 '긍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스윙을 간결하게 바꾸면서 볼을 홀 가까이 붙이는 능력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진짜 달라진 것은 마음가짐이에요. '필드에서는 즐겁게 치자'고 마음 먹으니 골프가 잘돼요." 다소 싱거운 대답에 이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설명이 뒤따랐다. "지난해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하면서 꼭 우승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너무 부담을 줬나 봐요. 신인왕은 됐지만 정작 우승은 한 번도 못했어요." 마음을 비우니 우승이 왔다고 했다. "올해 말 호주 전지훈련을 하면서 성적보다는 내 자신이 만족하는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난 8월 초 히든밸리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하고 나서 우승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구나 깨닫고 나니 2주 만에 하이원리조트컵에서 다시 우승하게 되더라고요." 우승을 할수록 욕심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한두 번 우승하고 20등, 30등 하는 것보다 우승은 없어도 꾸준히 상위권에 머무는 기복 없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면서 "사실 그런 선수들이 우승할 확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안신애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가 뉴질랜드 대표로 활약한 이력이 있다.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제 국내 코스와 잔디ㆍ투어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반짝 돌풍'이 아님을 시사한다. 3일 경기 화성의 리베라CC에서 개막하는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안신애는 지난해에는 컷오프를 당했다. "신지애ㆍ김하늘ㆍ이현주 등 이 대회 챔피언들이 우승 이후 술술 풀린 것으로 안다"고 말한 그는 "아픔이 있었던 대회를 행운의 대회로 만들어 상금왕ㆍ다승왕에 한 걸음 다가서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단타자'들에 대한 조언도 건넸다. "자신의 거리를 이해하고 인정하세요. 욕심 버리고 편안히 부드럽게 치는 거죠. 골프는 거리보다 정확도가 더 필요한 게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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