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를 허용치 않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속에도 채권 시장이 쭉쭉 커나가고 있다. 검은 천의 차도르(chaddor)를 두른 채 눈만 내놓은 아줌마 부대들의 모습이 주식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사막 한 가운데 피어나는 꽃과 같은 이 진기한 현상이 21세기 오늘 중동 땅 새로운 풍속도다. 지금 아랍 한복판에서 부는 바람은 돈 바람, 이슬람과 사사건건 부딪혀온 서구식 자본화의 폭풍이다. 이 회오리의 동력은 물론 석유를 팔아 생긴 돈, 오일 머니다. 자본 시장의 ‘꽃’ 채권시장, 일명 ‘수쿠크’라 불리는 이슬람 채권 시장에 대해 미 월스트릿저널(WSJ)은 최근 “금리 인상 등으로 투자수익률이 낮아지는 선진국 증권시장에 대한 대안”이라고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 체계인 ‘샤리아’는 채권에 대한 이자 지급을 금지하고 있어 수쿠크는 채권 발행자가 부동산 등 자산을 특수 목적회사 등에 임대한 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대당금 형식으로 주는 편법이 사용되고 있다. 수쿠크 거래는 중동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식 시장의 성장세는 더 두드러진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레이트연합,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의 주식시장 시가 총액은 4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 아랍권 전체로 총 1조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증시 시가 총액이 5,000억 달러를 상회, 한국과 대만 증시 규모를 추월했다는 것이 블룸버그 통신의 최근 보도다. 또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는 뉴욕상업거래소와 합작으로 중동 지역 처음으로 에너지 금속 등을 취급하는 선물 거래소가 올해 신설되는 등 런던 금융가를 본뜬 초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1970년 오일 쇼크기 이후 오일 머니는 국제 사채시장 자금 정도에서 이제 치솟는 유가와 이에 따른 개선된 재정 여건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도 금융권으로 이처럼 속속 파고 들고 있다.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며 사사건건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것처럼 비쳐지던 상당수 중동의 아랍국들이 한편에서는 오일 머니를 앞세우고 글로벌 자본 경쟁에 뛰어 들 채비를 갖추고 있는 건 분명 지구촌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메가 트렌드다. 이런 추세 속 이슬람 권을 향한 세계 각국의 눈은 충혈돼있다. 특히 오일 달러를 주어 담기 위한 서방 선진국들의 눈매는 먹이를 찾는 매의 그것이다. 고유가로 재정이 넉넉해진 중동 등 이슬람권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제 2의 중동붐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과 직접 관련이 있다. 이 같은 서방의 경제적 파상 공세 조짐에 대해 이슬람권의 방어도 예전과는 다르다. 특히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국제이슬람기구(OIC)다. OIC의 경제 분과격인 이슬람 개발은행(IBD)는 지난 6월 말레이시아 총회에서 인프라 확충을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채권펀드를 만들고 자본금 10억 달러 규모의 이슬람 무역금융기구를 두바이에 설치키로 했다. 서방 자본에 대해 이슬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이슬람의 서방에 대한 대응은 일부 무력 투쟁의 차원에서 이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직화돼가고 있으며 특히 자금면에서의 운용 및 투자 방향 등은 과거보단 훨씬 세련돼지고 있다. 아랍권이 진짜 한 데 뭉친다면 그 힘은 간단히 볼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석유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의 충돌은 이제 대 테러전에서 경제전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돼 가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다. 미 부시 대통령이 준비해 나가야 할 건 테러전이 아니라 대(對) 유교 및 이슬람권과의 자본 전쟁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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