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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퇴장 쇼크] '정년 연장'을 보는 엇갈린 시선

"노하우 활용 도움" vs "청년취업 저해"… 老·靑 충돌 현실로<br>710여만명 구조조정대상 1순위 몰려 '불안한 나날'<br>30년 기술력·산업역군 정신 하루아침에 사라질 판<br>임금피크제·계약직 재고용 등으로 '윈윈해법' 찾아야

"인생 2막 힘차게 삽니다" 현대중공업은 58세 정년퇴직 이후 본인이 원하고 건강이나 신병상 문제가 없으면 퇴직 이전 직급으로 재고용해 이들이 30여년 동안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중목(왼쪽부터) 현대중공업 기장, 손보익 기원, 송윤 기장이 함께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올해 28세의 취업 준비생 A씨. 그는 최근 한국전력이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한다는 소식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올해로 정년을 맞는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전력에 입사하기 위해 준비해왔지만 정년 연장으로 취업문이 더 좁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A씨의 아버지인 B씨도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 대학생인 둘째 딸과 가족을 위해서는 정년이 연장되는 것이 좋지만 큰 아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는 "내가 아들의 미래를 막는 것 같아 아들 보기가 민망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베이비 붐 세대를 위한 고용 연장이 신규 취업을 가로막는 새로운 장벽으로 등장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노령화와 더불어 총 710만명 이상에 달하는 베이비 붐 세대의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피크 등 고용 연장 방안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새로운 갈등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기업이 베이비 붐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업종에 따라 분명히 온도 차이가 있다. 조선ㆍ철강ㆍ기계 등 다년간에 걸친 숙련이 필요한 업종의 기업은 베이비 붐 세대의 뛰어난 숙련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반면 정보통신(IT). 금융, 유통 등 빠른 변화가 생존을 가르는 업종의 기업은 이제 이들의 유효기간이 다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정년이 58세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50세 이상의 임직원이 전체 직원 중 41%에 달하고 베이비 붐 초반 세대인 1955년 이전 출생자가 1,000명이 넘을 정도다. 이들이 현장에서 30여년간 익혀온 노하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고 회사 측은 판단하고 있다. 반면 정년이 55세인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국내 근무 임직원 중 50세 이상이 0.9%에 불과하다. 전체 직원 중 50세 이상 비율과 임원 비율(1.1%)을 고려하면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직원은 대부분 정년에 미달하는 50세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다. 고용 측면에서도 각 기업의 인력구조에 따라 베이비 붐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베이비 붐 세대가 많이 포진한 기업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1순위로 이들을 꼽는다. 조직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고비용 인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가 적은 기업은 이들이 기업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관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건비ㆍ시장적응력 등을 고려하면 베이비 붐 세대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다"면서 "그들이 30여년간 쌓아온 노하우는 여전히 현장에서 가치가 있고 기업성장에 끼친 기여도 등을 감안하면 적절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기업 내 정서"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30년 노하우, 산업역군 정신=베이비 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정년을 맞으면 각 기업별로 한 해에 수백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30년 이상 근무해온 인력이 한꺼번에 퇴사함에 따라 기술 공백은 물론 당장 생산성 및 품질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철강업체의 한 관계자는 "수십년간 체득한 노하우와 기술력이 한꺼번에 회사 밖으로 퇴출되는 것은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며 "각 기업별로 고용 연장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고 다양한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정년퇴직 후에도 자녀 학비와 노후자금 때문에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데 해당 기업에서 흡수하지 않는 한 마땅히 이직할 방법이 없다"며 "30여년간 체득해온 소중한 전문지식이 그냥 길거리에 버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베이비 붐 세대 퇴장에 따른 또 다른 걱정은 조직문화 실종. 성실과 근면,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온몸으로 실현한 세대가 한꺼번에 회사를 그만두면 젊은 세대를 이끌어줄 나침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S사의 인사담당 한 관계자는 우리 세대는 신입사원 시절에 선배에게 맞기도 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죽기 직전까지 술을 먹었지만 요즘 신입사원에게 그런 요구를 하면 큰 일 난다"며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것은 좋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직장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마음은 과거보다 훨씬 덜한 것 같다"고 전했다. ◇윈윈(win win)의 해법을 찾아라=현장 기능인력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한 중공업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정년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 해외지사 근무 등이 그것. 실제 현대중공업은 2008년 단체협약을 통해 생산직의 경우 정년 후 재계약 여부를 회사가 아닌 직원이 결정하도록 했다. 신병ㆍ건강상 등의 문제로 작업이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고 본인이 희망하면 정년 후 1년 동안 더 근무할 수 있다. 재고용된 직원은 만 58세 때 받던 통상임금의 80%를 받는다.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학자금 지원 혜택도 주어진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년퇴직자 총 564명(만 58세) 중 약 93%인 523명이 재고용됐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50대에 신체적 나이 때문에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현재가 평생의 직장생활 중 기능면에서 최고의 절정에 달한 때"라며 "이분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약간의 인건비로 기업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해외지사나 동종업체로 이직해 제2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50대 중ㆍ후반 세대는 대부분 자녀들이 출가했기 때문에 해외근무에 걸림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후진국이나 성장기업에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올해로 63세를 맞은 김명수씨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198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선체 철구조 용접분야에서 근무하다 2004년 정년퇴직했다. 김씨는 퇴직 이후 대우조선 루마니아 조선소에 파견근무를 자청해 3년 반 동안 근무했고 2008년 10월부터는 중국의 조선부문 협력업체인 삼진선업에 취업해 1년간 일했다. 루마니아에서 근무할 때는 부인과 함께 프랑스로 휴가를 다녀오는 등 '화려한 노년'을 즐겼다. 김씨는 "선박 제조기술을 잘 모르는 외국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니 뿌듯한 보람을 느꼈고 노년에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부부 금슬이 더 좋아졌다"며 "스스로 '은퇴'라는 단어를 지우고 더 일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조선업체가 오라고 해 중국으로 다시 나갈 예정"이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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