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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월 14일] '표준통화'와 세계 금융위기

최갑홍(한국표준협회장)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전세계를 옥죄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증폭되더니 급기야 세계적 신용경색을 몰고 와 실물경제를 냉각시키고 있다. 일부 신흥국가를 중심으로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바닥을 찍었다는 확신은 갖기 힘들다. 지난 2월 미국의 실업률은 1983년 이래 2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유럽은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풀며 떨어지는 성장률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세계적 경기침체의 단초를 제공한 금융위기는 월가의 탐욕에 의한 파생상품 거품이 한 원인을 제공했지만 1990년 이후 세계적 저금리에 기초한 풍부한 유동성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국제거래의 기준이 되는 달러라는 국제표준(기축통화)을 마구잡이로 찍어내 과잉소비를 유발하며 고속성장을 추구했다. 저가상품에 대한 과잉소비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키고 중국ㆍ인도 등 신흥국가의 과잉저축을 초래해 글로벌 불균형(세계적 과잉경제)을 확대시켰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과정에서 넘쳐 나는 달러화는 국제표준으로서의 신뢰와 가치를 상실, 지금의 경제위기와 같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가져왔다. '글로벌 표준'은 양날의 검
본래 세계통화 패권의 원조는 영국의 파운드화였다. 1819년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최초로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채택했다. 금이 세계통화의 표준이 된 것이다. 이후 신대륙에서 은이 대규모로 발견돼 은의 가치가 폭락하고 금에 상응하는 환율로 화폐를 발행하는 ‘금 대세론’이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통화패권의 헤게모니를 쥔 영국도 2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의 대규모 생산방식과 중화학공업에 뒤지면서 세계무대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미국은 대량생산에 유리한 포드의 컨베이어 방식과 같은 표준을 선점하며 세계경제의 전면에 등장했다. 1ㆍ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 금융표준을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군수물자를 대며 엄청난 금을 확보한 미국은 금본위제나 그와 유사한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특히 1944년 브레튼우즈시에서 열린 회의에서 ‘금 1온스=35달러(1달러=금 0.8g)’의 기축통화를 구축하며 달러만을 국제결제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를 본격 실시, 전후 통화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었다. 이는 국제무역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미국에 대한 글로벌 경제의 의존도를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미국은 프랑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71년 달러화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포기했다.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와 상관없이 달러를 찍는 윤전기의 소리는 점점 빨라졌고 소비는 미국 국민만이 누리는 특권이 됐다.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왔던 제조업 강국 일본도 엔화 가치를 급등시킨 ‘플라자합의’에 발목이 잡혀 달러패권을 견제하지 못했다. 미국은 금의 일정량에 연계해 달러를 발행해야 한다는 국제표준을 스스로 무시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글로벌 거품경제를 계속 키웠다. '달러 패권'이 거품경제 키워
글로벌 금융위기는 표준의 양면성 가운데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하기 위해 ‘소리없는 표준전쟁’을 하고 있다. 전세계에 생산ㆍ판매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컴퓨터 운영체제를 표준화해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반면 국제표준이 신뢰를 상실하고 방향성을 잃으면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불확실성과 위험이 지배하는 혼돈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이처럼 표준은 잘 활용하면 삶을 윤택하게 하고 인류발전을 가속화 하지만 그 근간이 흔들리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올바른 표준을 설정하는 노력이 개인과 기업ㆍ국가의 효율과 능률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깨달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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