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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치는 퀴즈 게임이 아니다

김창익 기자<정치부>

“이 문제를 풀면 서울대 간다.” 고등학교 때 한 수학선생님이 가끔씩 칠판에 어려운 일본 문제를 적어놓고는 이렇게 말하며 풀게 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경쟁적으로 해답 찾기에 골몰했고 가장 먼저 답을 맞힌 친구가 앞에 나가 답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서너 문제가 풀리면 50분의 수업은 선생님의 의도(?)대로 끝이 났다. 그 사이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잡지를 출석부 뒤에 숨겨서 읽곤 했다. 문제를 푼 학생은 성취감에 잠시 우쭐했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그 문제에 무관심했고 결과적으로 수업은 선생님과 극소수의 학생을 위한 것이 돼버렸다. 지금의 정치판이 이와 닮았다면 비약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이란 명제를 꺼내든 뒤 정치권은 물론 기자들이 앞 다퉈 대통령의 의중을 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것이라는 둥, 내각제 개헌을 위한 수순이라는 둥 연일 시나리오성 분석과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시간이 지나 전망이 적중하면 잠시 우쭐한다. 기자들이 대통령의 수읽기에 골몰하는 동안 정치권 분위기는 대체로 그렇게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이 모든 상황이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느낌을 정치부 기자라면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이젠 노 대통령의 발언을 해석하는 일이 “짜증난다”는 기자도 있고 노 대통령을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는 기자도 많다. 한나라당에서도 이 같은 심정을 토로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있다. 문제는 정작 국민들은 이 같은 정치권의 ‘퀴즈 게임’에 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을 앞두고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글 중에는 “대통령이 연정, 선거구제 개편, 개헌 등 정치문제에 올인할 정도로 나라사정이 한가하지 않다” “연정이나 정치에 국민은 관심이 없다”는 식의 글들이 많다. 여권에서도 할 말은 있다. 오영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7일 “대통령의 생각은 순수한 데 왜 자꾸 다른 식으로 해석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현 정부와 여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기자는 없다. 그렇다고 난제 풀이를 멈출 수 없다는 점에 짜증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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