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금융시장에서 자금 순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권 내에서는 자금 순환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시중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기업 부도에 대한 공포가 여전하여 안전자산으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금융위기 이후 대량의 유동성을 푼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이제 이 자금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은행가협회(BBA)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런던 자금시장에서 거래되는 3개월 만기 달러 리보(런던은행간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하락한 2.10%를 기록, 지난 2004년 10월이후 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설정한 목표치보다는 아직 1.1%포인트나 높은 수준이지만 신용위기가 발생하기 전의 0.12%포인트에는 많이 근접한 수준이다. 이날 유로리보 3개월물도 전날보다 다소 떨어져 3.15%를 나타냈다. 하지만 기업들과 펀드 등 일반 투자자들이 참가하는 자금시장에서는 신용경색이 여전한 상태다. 전날 미 국채 시장에서는 3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이 한때 연 -0.05%를 기록했으며, 1개월물은 사실상 '제로(0)'에 거래됐다. 이는 연말을 맞아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수요가 과도하게 몰린 탓도 있지만 단기자금 시장에서 현금을 마땅히 운용할 곳을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대거 국채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주식은 물론 기업어음(CP)나 양도성예금증서(CD)도 믿을 수 없고, 심지어 시중은행에 현금을 예치하는 것도 100%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투자심리가 채권수익률을 마이너스로까지 떨어 뜨린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소한 올 연말 까지는 계속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런던 BGC파트너사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뷰익은 "은행들간 거래 금리인 리보의 하락은 일반인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서 "시장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자금 순환을 촉진할 더 많은 조치를 취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채권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투자자 빌 그로스도 이날 미국 국채시장이 과다 평가돼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펀드인 핌코를 운영하는 그로스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회견에서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면서 "미 국채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전세계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이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 9월이후 FRB로부터 1,5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미 최대 보험사 AIG는 이날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등 파생상품 거래 손실만 1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은 AIG가 구제금융만으로는 이 같은 손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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