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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3월 23일] 신임 한은총재에 바라는 것들

얼마 전 북한에서 하루아침에 화폐개혁을 실시해 구화폐의 가치를 100분의1로 떨어뜨리는 시도를 했다. 아마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약간의 재산을 축적한 주민들에 대해 약화된 통제력을 회복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심각한 경제활동 위축과 상업적 거래 마비가 발생했고 책임자가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바로 화폐개혁 같은 극단적 수단을 포함한 통화정책이 한 국가의 경제, 심지어는 안보까지 흔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시장 선도하는 통화정책 펴야 우리나라에서는 통화정책 담당기관인 한국은행의 총재 임기가 이달 말로 만료되고 신임총재가 내정됐다. 북한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 총재가 누가 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중앙은행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신임총재가 개인적으로 어떤 능력, 경력과 성품을 가졌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한편 민주국가의 정치 체제하에서는 어느 사람이 그 자리에 앉더라도 중앙은행 직원 개개인이 맡은 바를 다한다면 기능이 잘 발휘되도록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통화정책은 경제의 실물거래를 매개하는 돈의 가치를 그때마다의 경제 상황에 비춰 바람직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돈의 가치가 급격히 변동하면 실물거래시 가격 불확실성이 커져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결과가 생긴다. 따라서 통화정책에서는 돈의 가치가 가능한 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경제상황 변화로 가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변화 방향과 그 크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그리고 통화정책은 시장을 선도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을 추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경제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립은 그를 위해 요구되는 전문성을 고려해 독립된 위원회 조직이 담당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위원회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한 성격으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임기 중인 정권이 경제를 운용하는데 한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 등 단기적 목표 달성을 위해 통화정책을 사용하고 싶은 유인이 많다.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돈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고 단기적으로 돈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정책이 중장기적으로는 고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통화당국의 독립성은 정권의 통화정책 개입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신임 중앙은행 총재도 이러한 독립성의 중요성을 존중하고 지키기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중앙은행은 주로 통화정책 운용을 책임지지만 이것만이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중앙은행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서 민간 금융기관들의 '최후의 대부자 기능(lender of last resort)'도 맡고 있다. 대규모 경제위기하에서 부실화된 금융기관의 지원활용과 정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집행해 위기확산을 막고 경제회복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감독기관들과 정보 공조를 최종대부자 기능으로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의 감독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 감독은 주로 금융감독원이라는 별도기구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기능의 수행을 위해 평상시에도 금융기관들의 조사 감독을 일부 맡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조사 감독 업무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조사 감독하는 기관이 여럿이므로 이들 간 공조는 필수적이다. 최근 금융위기에 우리나라 금융 감독당국들 간에는 밀접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은 면이 있다. 따라서 신임 중앙은행 총재는 금융기관들의 조사 감독 업무는 타 감독기관들과의 정보 공유 등 공조 체계를 마련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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