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밧화 폭락을 시작으로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을 맞는다. 강산이 한 번쯤 변할 그 사이에 국제 금융시스템이 달라지고 투자양태가 변했다. 하지만 글로벌 자금의 거대한 움직임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아시아 위기 10년을 계기로 새로운 위기 가능성을 2회에 걸쳐 진단한다. 지난 97년 7월2일 태국중앙은행인 타일랜드은행은 그 동안 달러에 고정시켰던 환율제도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1달러당 24밧에 환율을 묶어두려고 발버둥치며 외환보유고를 풀었지만 당해낼 힘이 없었다. 그날 밧화는 1달러당 24.70밧에서 29.55밧으로 무려 19.6%나 폭락했다. 선진국 은행들은 태국에 빌려준 단기자금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고 돌려달라고 독촉해댔고 보유외환은 넉넉지 않았다. 태국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보유외환을 모두 써버렸다. 태국 정부의 항복이 발표되자 그날 뉴욕 맨해튼 남쪽에 포진한 외환딜러들은 환호를 지르며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밧화 폭락에서 출발한 통화위기는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까지 도미노처럼 밀려들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통화위기를 겪었던 국가의 금융시스템은 거의 완전하게 복원되고 경제는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에는 새로운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0년 전 아시아 위기가 ‘네 마리의 용’이라고 치켜세우며 선진국 은행들이 아시아에 돈을 펑펑 빌려주다가 일시에 빼면서 발생했다면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미국계 펀드들의 투자붐은 새로운 위기의 가능성을 예고케 한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유동성 과잉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 역시 자국의 경기부양을 이유로 저금리 및 통화 약세 정책을 유지, 글로벌 시장에 새로운 유동성을 계속 공급해왔다. 그러나 넘치는 유동성은 반드시 새로운 거품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는 부동산시장은 물론 금융시장 등 글로벌 자산 버블 붕괴 우려로 확산되고 있다. 각국이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글로벌 금리인상 행렬에 동참하면서 유동성에 낀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선진국과 달리 금융시장 인프라가 튼튼하지 못한 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금융 부문에서 취약한 상태에 노출돼 있다. 미국 금리상승 및 중국의 긴축정책→글로벌 유동성 축소→이머징 마켓 자금 이탈→이머징 마켓 자산 버블 붕괴의 순환고리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머징 마켓에는 고수익 고위험을 노리는 자금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언제든지 시장을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동성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갈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 10년 만에 다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 투자전략가는 최근 칼럼에서 “2002년부터 주식과 원자재, 부동산, 미술품, 심지어 희귀한 바이올린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자산 가격이 동시 다발적으로 폭등하고 있다”며 “이처럼 모든 종류의 자산이 동시에 오른 적은 역사적으로 없었으며 아주 드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과잉 유동성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자산시장의 거품현상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국가의 유동성 수준을 분석한 결과 유럽연합(EU)ㆍ영국ㆍ호주ㆍ일본ㆍ한국 등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실물경제를 웃도는 초과 유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저금리 기조로 증대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됨에 따라 전세계 자산 가격 거품 형성이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넘치는 글로벌 유동성과 이로 인한 금융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이 세계 경제의 성장에 위협 요소가 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BIS는 “지난 수년간 풍부한 유동성과 추세를 웃도는 글로벌 경제의 성장에 따라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무감각해졌다”며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갑작스러운 유동성 손실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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