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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스크린쿼터 유감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정부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신문에서 알 파치노 주연의 ‘베니스의 상인’ 기사를 읽고 나서 그 영화를 보려고 상영 극장을 알아봤더니 참 찾기 힘들더군요. 분명 영화가 상영 중이라고 했는데. 평소 즐겨 찾던 극장에 문의했더니 ‘그런 영화도 있느냐’는 황당한 대답만 들었습니다. 우리 집 하고는 한참 떨어진 수도권의 어느 극장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상영하는 것을 겨우 알아내고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 평소 영화를 즐겨본다는 그 관료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쯤 되면 외국영화 스크린쿼터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웃으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 극장에는 문화적 다양성이 없어요.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들이 온통 한국영화 일색이니….” 꼭 ‘베니스의 상인’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두루 환영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극장 간판에서 보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만큼 예술영화는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가 어렵다. 때문에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간판을 내걸어도 관객이 찾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상영을 중단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영화사 백두대간의 시네큐브는 내심 기대했던 영화 ‘황야의 마니투’를 조기 종영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는 1,200만명의 관객이 찾았지만 한국에서는 동원 관객이 1,200여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런 식이다. 과거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배우들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모으는 경우가 허다했다. 알랭 들롱이 대표적인 인물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극장에는 온통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들뿐이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는 스타가 없고 제작비도 40억원대인데다 장르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사극”이라면서 “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아 스크린쿼터가 축소됐다면 ‘왕의 남자’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진실성을 담고 있는 점을 굳이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국 영화 상영일수를 채워야 하는 극장주들의 입장에서는 ‘왕의 남자’건 뭐건 한국 영화를 스크린에 올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가 없는 상황에서는 극장주들이 ‘왕의 남자’의 흥행 가능성에 의심을 품고 아예 상영기회 자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스크린 쿼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상영한 ‘왕의 남자’가 흥행 대박을 터뜨린 케이스라고 우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한국 영화계의 문제는 지나친 상업성에 매몰돼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차기작을 준비 중인 임권택 감독이 연극배우를 캐스팅했다가 유명 배우를 써야 한다는 전주(錢主)들의 압력을 못 이겨 캐스팅 약속을 저버릴 수밖에 없는 게 저간의 현실이다. 또 스크린쿼터가 이른바 대박 한국영화를 위한 소도구로 전락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왕의 남자’처럼 대박 영화 몇 편만 걸면 웬만한 스크린쿼터는 모두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들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시아 일대를 석권하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으로 중국과 대만 등에서 한국 드라마의 방영을 제한하고 있는 경우는 또 무엇일까. 우리 영화인들이 ‘미 제국주의의 문화침략’을 운운하고 있을 때 아시아 각국에서는 ‘한국의 문화침략’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는 자국의 영상물을 우리나라가 수입해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우긴 적도 있다. 세상 이치의 하나는 주고받는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보호하고 있는 것이 진짜 한국 문화인지, 아니면 그저 한국의 블록버스터들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뭔지 한번쯤 되물어볼 때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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