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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은 디노미네이션 말할 때 아니다

여야 일부 국회 의원들이 고액권 화폐 발행 필요성을 제기한데 이어 화폐단위를 일률적으로 낮추는 디노미네이션 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금은 디노미네이션을 논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난 타개인데 화폐논쟁이 도움은커녕 오히려 경제를 더 꼬이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디노미네이션은 참여정부 초기 한은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래 그동안 몇 차례 논란이 빚어졌으나 지난 5월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박승 한은 총재의 발언으로 ‘당분간은 접어둘’ 문제로 일단락 됐던 것이다. 당시 이 부총리는 우리경제가 디노미네이션을 생각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박 총재는 준비가 안된 상태로 중장기 과제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정치권이 다시 들고 나왔으니 그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경제가 그 때보다 훨씬 어려워진 데다 국회가 이 보다 먼저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고액권 화폐와 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의 주된 근거는 우리 화폐가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우리경제는 엄청나게 커졌는데 화폐단위는 그대로 여서 달라진 경제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로 인한 수표발행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충분히 타당성 있는 이야기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화폐가치가 가장 낮아 조만간 국제적으로 기이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점도 깊이 헤아려야 한다. 부패조장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하자. 하지만 가뜩이나 심상찮은 물가상승과 자금의 해외유출을 더욱 부추기고 착시현상으로 인한 심리적 자산가치 하락 등에 따른 혼란 우려 등은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경제에 치명상을 안길 수도 있다. 한은은 2년 넘게 검토한 결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렇게 낙관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경제는 호재에 둔감하고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충격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 디노미네이션 찬성론자들은 실행까지엔 4~5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발등의 불인 경제난 해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일을 하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와 완급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경제가 어떤 상황인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생활고로 가정이 깨지는 가족해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가 할 일은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출자총액제한 완화, 일자리 창출 문제 등 당장의 현안을 더 심도 있게 논의하고 먼저 처리해야 한다. 일자리창출 특위를 만들기로 했으면서 여지껏 회의 한번 연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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