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식ㆍ비공식 채널을 통해 잇따라 한나라당의 ‘토지임대부 주택(일명 반값 아파트) 공급제도’에 반대 입장을 밝힘으로써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정치권과 거리두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건설교통부의 주무 본부장인 강팔문 주거복지본부장이 직접 국정홍보처 홈페이지 국정 브리핑에서 공개적으로 ‘반값 아파트’ 반대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더 이상 정치권의 소모적 논쟁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반값 아파트 시범사업은 (토지임대부가 아닌) 환매조건부”라고 밝힘으로써 이 같은 관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의 반값 아파트 추진에 대한 ‘원론적 검토’라는 신중론으로 일관했던 기존 정부의 입장이 ‘공식 반대’라는 강경 대응으로 선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돌입하면서 야당이 당론으로 정한 정책대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며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열린우리당의 ‘환매조건부 공급’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인 것 같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재정경제부ㆍ건교부 등 부동산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부처들은 11ㆍ15대책 이후 부쩍 강도가 높아진 정치권의 움직임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반값 아파트 방안은 기존 주택공급 체계와 배치되는 제도인 만큼 체계적이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데도 정치권이 너무 앞서가다 보니 정부의 운신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정책 주도권을 완전히 정치권에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개적으로 반값 아파트 도입 방침에 제동을 건 이유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일단 공개적으로는 야당과 힘겨루기에 나섰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당과도 거리를 두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 열린 1차 당정협의에서 여당이 제시한 환매조건부 분양제도에 대해 이후 비공식 채널을 통한 반대 입장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5일 ‘당정협의’는 정부의 태도 변화에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정협의 직후 열린우리당이 민간아파트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도입 합의 방침을 밝혔음에도 막상 재경부나 건교부 등 관련부처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한 보완 내지는 보충설명이 없었던 것. 형식적으로나마 당정이 합의한 사항임에도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도입 방침이나 향후 계획에 대한 공식적 언급을 아예 거부하는 분위기다. 정부 제도개선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민간아파트 분양가 인하방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여당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분양가상한제 도입 방침은 당정 합의라기보다 당의 일방적 결정에 가깝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맞서 내세운 환매조건부 분양을 ‘공공 전세’ 수준으로 해석한 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여당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칫 정치권과 정부의 힘겨루기가 심화할 경우 백화점식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집값안정대책이 확실한 구심점 없이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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