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 타워콘도 내 에메랄드홀. 무대 위에서 한 학생이 진지하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을 연주하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첼리스트 정명화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연주자의 손이 멈춘다. “굿 사운드(Good sound). 자세도 좋네요.” 정명화씨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스터클래스에 참관한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영어로 해도 괜찮겠죠? 시간이 없어서 두 가지 언어로 모두 설명할 순 없네요.” 객석 곳곳에 자리 잡은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플레이 어 리틀 패스터 히어(Play a little faster here)” 정명화씨는 이 학생의 연주를 들으며 미세한 부분을 일일이 지적했다. 직접 연주하며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미흡한 부분은 몇 번씩 반복시키기도 했다. 연주자의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 마스터클래스는 끝났다.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초과했다. 강원도 평창은 요즘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의 음악 전공 학생들과 전문 연주자들로 북적댄다. 이들은 올해 5회를 맞은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든 것. 참가한 이들 중에는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축제 기간 열리는 음악학교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전문연주자의 콘서트와 더불어 음악학교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음악학교는 2주 동안 매일 8시간씩 개인 레슨, 학생연주회, 마스터클래스 등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방학 보충수업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 수강생 160여 명이 등록했고, 내년에는 처음으로 피아노 학교도 열릴 예정이다. 음대 교수뿐 아니라 지안 왕(첼로) 등 교편을 잡지 않은 솔로이스트들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명화 씨는 8일 마스터클래스에서 두 명의 학생을 지도했다. 서울대 음대 2학년생인 홍진호(21)씨와 미국 보스턴 월넛힐 스쿨 10학년생인 제임스 김(15)군. 특히 제임스 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명화 씨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다. 정명화씨는 “제임스 학생은 지난해 몇 가지만 지적했는데 자세와 테크닉이 무척 좋아졌다”며 “마스터클래스와 더불어 음악학교의 실내악 레슨이 학생들 상호간에 서로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미국 콜로라도주의 조그만 폐광 마을 ‘아스펜’을 클래식 축제의 중심지로 바꾼 ‘아스펜 음악제’를 모델로 태어났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7세 때 아스펜 음악학교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올해 아스펜 음악제를 방문해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매년 아스펜 음악제에 연주자 겸 교수로 참가하는 비올리스트 로렌스 더튼씨는 올해 처음 평창을 찾았다. 그는 “학생들을 진지하게 가르칠 수 있고 실력도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스펜음악제를 지향하며 이제는 아스펜의 위상을 넘어서려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성장배경에는 음악학교가 있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