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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비보이 문화, 신통은 한데…

TV에서 처음 본 개그맨 노홍철이 재미있었으면 신세대. 황당했으면 구세대. 뭐 이런 식 가름에 단서를 준 건 축구감독 차범근씨다. 그는 얼마 전 독일월드컵 때 과거ㆍ현재 축구 선수간 차이를 밝힌 한 기고를 통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노홍철에 대한 느낌을 세대차의 사례로 담았다. 앞뒤 안 재고 정신없이 떠드는 노홍철을 딸의 친구로 사석에서 처음 만난 순간을 그는 “곤혹스럽고 불편했다”고 표현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 속에서 차씨는 그러나 그런 자유로운 젊음에 거는 기대감도 함께 녹였다. 청소년 문화의 개성 살려줘야 아마 십수년 전이었다면, 지금도 노홍철을 불편하게 보는 아저씨 세대라면 틀림없이 ‘또라이판’으로 규정할 일이 지난주 말 광진구 악스홀에서 펼쳐졌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젊은이들이 펼친 ‘광란의 춤판’. 그 주범은 ‘비보이’(B-boy)들이다. 이 대책 없는 젊은 녀석들이 일을 내고 있는 형국이 그런데 장난이 아니다. 원래 뉴욕 뒷골목에서 시작된 브레이크 댄스는 유럽으로 가 리듬과 스타일이 더해졌다. 여기에 다시 파워풀하고 강렬한 비트를 접목시켜 댄스를 글로벌 문화 코드로 정착시킨 게 바로 우리의 토종 비보이들이다. 386 이전 세대에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불량학생’ 과에서 한치도 비켜나 있지 않았을 이들이 지금 만들어가는 트렌드는 또 다른 한류(韓流). 각종 세계대회를 휩쓸며 외국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물론 기업들까지 앞 다퉈 이들을 업고 이른바 ‘비보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난타에서 한류까지’ 한국 청소년들의 아티스트적 재능은 이미 세계 문화의 중심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문화를 넘어 게임ㆍ디자인 등 산업영역으로 확대되며 ‘소프트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에 푸른 희망의 빛을 던지고 있다. 전문적 춤꾼만 국내 약 3,000여명으로 추산되는 비보이들. 그런데 그중에는 예상을 뒤엎고(?) 반듯하고 명문대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적지않다는 점에 아버지 세대들의 고개는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그 재능들이 입시교육에 찌든 상황 속에서 분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의 재치와 문화적 감수성은 장담하건데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단언할 만하다. 외국 어느 캠퍼스에서도 우리 청소년들 만한 재기와 문화적 순발력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선입견만으로 보면 우리 청소년들이 제도의 틀 내에 묶여 있고 서양은 제도 바깥에서 청소년 문화의 색깔을 마음껏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건 적지않은 착각이다. 한국의 청소년 문화가 입시라는 틀에 얽매인 환경 속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난 인동초 같다면 선진권의 경우는 세련되고 잘 정비된 문화 교육적 제도 속에서 화초처럼 타율적으로 길러지는 경향성이 강하다. 문제는 바로 이런 상황의 결과물들을 기성 세대들이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즉 척박하고 강압적인 환경이다 보니 우리 청소년 문화의 속성은 반항적이고 충동적인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상업주의 방송을 비롯 감각적 자극만을 좇는 대중문화 여건이 문화적 가벼움을 부채질하고 있다. 자생적 청소년 문화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우려감이 커가는 이유다. 인문적 소양 키울 시스템 병행을 이제 얘기를 정리해보자. 어른들이 할 일은 두 가지이다. 먼저 비보이류(類) 청소년 문화의 개성을 살려주며 그들 스스로가 문화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을 제도로써 도와주고 산업적 측면에까지 그것들을 확대 연결시켜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호흡 긴 문화에 대한 접촉의 폭을 넓히도록 유도하는 일이 꼭 필요한 사항이다. 장르 불문, 무게감 있는 문화 영역의 많은 부분이 고사 직전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대한민국 문화 동네 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가벼움만이 판치는 문화 풍토로는 결코 진정한 일류가 될 수 없다. 태생적으로 우성(優性)인 한국 청소년들의 문화감각에 깊이 있는 인문적 소양을 고양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우리 청소년들이 맞을 미래는 밝다. 비보이가 신통하면서도 한국 청소년 문화 전반의 트렌드에 일말의 우려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건 기성세대의 못 말리는 관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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