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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를 밟아 겁에 질린 병사와 대검으로 땅을 파 뇌관을 제거하는 동료. 영화에 수없이 등장한 장면이다. 2000년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뢰를 밟는 즉시 발목이 잘리거나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지뢰는 말 그대로 죽음의 덫. 적을 막기 위해 매설하지만 되레 아군과 국민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전에서 지뢰에 희생된 미군의 90%는 아군이 묻은 지뢰에 당했다. 전쟁이 끝나도 지뢰는 남는다. 2차대전 때 묻은 지뢰가 50년이 지나 터진 적도 있다. 지표면에 숨은 살기(殺氣)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를 고민하던 국제적 협력과 노력은 1997년 12월3일 오타와협약을 낳았다. 121개국이 합의한 협약문 22개조의 골자는 협약의 정식명칭 속에 녹아 있다. '대인지뢰의 사용과 비축ㆍ생산ㆍ수출입을 금지하는 협약.' 가입 4년 후까지 보유분을, 10년 후에는 매설된 대인지뢰까지 전량 폐기해야 하는 의무조항에도 가입국은 계속 늘어나 156개국에 이른다. 협약 덕분에 지구촌의 지뢰 피해는 감소하는 추세다. 협약 이전까지 매년 2만5,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2008년의 희생자는 5,197명으로 줄어들었다. 예외인 나라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ㆍ중국ㆍ인도를 비롯한 39개국은 대인지뢰금지협약을 거부하고 있다. 남북한도 여기에 포함된다. 세계에서 가장 지뢰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면서도 제거 노력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군에서 간혹 제거작업에 들어가도 문제다. 불도저로 지뢰 의심지역을 통째로 밀어버려 수해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자연회복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어 보인다. 지구촌이 비인도적 광기로 배척하는 지뢰가 한반도에서도 걷힐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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