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배럴과 4,400만배럴. 미국과 독일의 1938년 석유소비량이다. 2차대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이 연합국에 제공한 석유만 약 60억배럴. 독일의 사용량은 13억배럴을 밑돈다. 독일은 어떻게 이런 차이를 딛고 전쟁을 수행했을까.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Friedrich Bergius)에게 답이 있다. 독일에는 원유 대신 그가 석탄에서 뽑아낸 인공석유가 있었으니까. 1913년 세계 최초로 석탄액화법을 개발한 그의 정점은 1931년. 석탄을 잘게 부순 후 수소첨가제와 고압을 가해 석유를 추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합성석유를 누구보다 반긴 사람은 히틀러. 군용 유류의 안정적 공급원으로 여기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 독일의 합성석유 생산량은 하루 7만2,000배럴. 총공급의 46%를 차지했다. 생산량이 12만4,000배럴로 늘어난 1944년 초에는 유류의 57%가 합성연료였다. 항공기의 95%는 합성석유로 날았다. 석탄을 짜내는 안간힘에도 독일을 무너뜨린 것은 결국 석유. 루마니아 유전이 점령당하고 합성연료공장이 폭격받은 후 저항력을 잃었다. 종전 후 베르기우스는 목재의 사료 전환, 대용식 개발에 힘쓰다 1947년 아르헨티나로 이주, 1949년 3월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합성석유는 부활하고 있다. 고유가와 석유고갈에 대비한 각국의 개발 경쟁이 한창이다. 2030년 세계시장 규모 추정이 300조원. 2020년까지 석유의 10%를 합성연료로 충당하겠다는 중국의 투자만 135조원에 달한다. 한국은 어떨까. 시작 단계다. 2030년까지 일산 10만배럴의 생산시설을 마련한다는 청사진 아래 걸음마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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