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타고 난 공주 프시케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시샘으로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살던 중 날개 돋은 무서운 뱀이 미래의 신랑으로 점지됐다는 말을 듣는다. 프시케는 절망하지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였기에 사랑의 신 에로스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불신과 호기심 때문에 또 다시 수난을 겪게 된다. ‘사랑의 전사’가 된 프시케는 난제들을 헤치고 결국 행복한 가정을 되찾는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뱀신랑’ 신화가 전해온다. 노부부가 간절한 기도로 얻은 아들이 안타깝게도 뱀으로 태어났는데 이웃집 셋째 딸이 뱀 아이에게 호감을 보인다. 셋째 딸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뱀은 허물을 벗고 잘생긴 남자가 된다. 유사한 이야기구조는 그리스 발칸반도와 우리네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발칸 반도와 한반도ㆍ인도ㆍ중동ㆍ북유럽 등지에서 살았던 신과 인간이 같이 만들어간 사건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먼 거리와 긴 시간을 관통하는 공통의 시선이 있다”고 말한다. ‘전사를 만들다’ 편은 사랑과 비전, 믿음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삶의 전사’를 주인공으로 사연을 풀어간다. 저자는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를 함께 내 놨다. 좀 더 큰 틀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저력인 신화의 역할을 짚어본다. 역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공통점을 보이는데 창조신화가 대표적 사례다. 태초의 중동 지역은 신의 세계, 천사와 악마의 세계 그리고 인간계로 분열돼 있었다. 유럽의 발칸반도는 제우스를 정점으로 한 신들의 세계,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계, 그리고 요정계, 괴물계, 인간계 등 더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고 북유럽은 9개의 세계로 쪼개져 있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 우리에겐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와 용왕의 바다왕국, 선계(仙界), 도깨비 세계, 구천을 떠도는 귀신계, 땅속 세계 그리고 인간계가 있었다. 이 다채로운 신화적 세계가 인류의 시작인 동시에 상상력의 촉발점이 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문화 컨텐츠나 브랜드 등이 스토리텔링과 이야기의 힘을 경쟁력으로 내 놓는 요즘, 이야기를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 담겨있는 신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