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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병영의 아들

천양희<시인>

무더위의 기승에 선풍기를 틀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한달 전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 친구는 무더운 날 선풍기도 에어컨도 아예 틀지 않는다고 한다. 아들은 땡볕에서 훈련받느라 비지땀을 흘리는데 어미가 어떻게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느냐며 눈물만 글썽거린다. 전쟁터에 보낸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 말라며 위로를 해보지만 더위보다 더 무더운 친구의 마음을 무엇으로도 시원하게 풀어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문득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이 생각났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넉넉한 친구가 속상해 하는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부모들은 아들은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면서 자랑스러워했지 않느냐고, 아들을 고생시키려 보낸 죄인처럼 생각하니 웬일이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의 대답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서 더 속상하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공평하게 사는 것 같지만 갈수록 하층민과 상류층의 차이가 심해져서 그 차이가 이제는 차별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힘센 부모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도 버젓이 사는데 왜 힘없는 부모들은 자식한테 죄인처럼 살아야 하느냐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젊어서 고생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냐며 위로하자 친구는 또 무슨 소리냐고 한다. 고생을 돈으로도 사는 세상인 줄 몰랐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친구가 속상해 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상관없이 자식에 대한 생각을 자식을 위해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제나 소수의 나쁜 사람들이 세상의 물을 흐리게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변신해보려고 지원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입대 경쟁률이 입사 경쟁률 못지않은 군대도 있다. 높은 경쟁의 벽을 뚫고 군인이 되는 청년들의 긍지에 대해 부모들도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 긍지는 청춘들만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긍지이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늠름한 의지, 겁 없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을 말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보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대목이 있다. 군대에 가는 것도 태어나려는 자의 세계와 같은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알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을 잘 지내줬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세상에 전쟁이 없고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아니라면 군대에 가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젊은이가 젊은이답게 살 수 있도록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 시기에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장래를 위해 설계하고 공부한다. 2년여라는 시간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 것인데 때를 놓치고 좌절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건 누구의 탓일까. 그러나 도전과 모험은 청년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내 친구의 아들도 그 특권을 무기삼아 속상해 하는 부모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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