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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풀이된 종교란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한 인간이 악함을 경계하고 선함을 권장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말한다. 삶의 행복과 내세의 안녕을 구하는 게 종교 본래의 취지이지만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십자군 전쟁' 같은 종교전쟁이 역사에 상흔을 남겼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단이 보여주는 작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불교를 폄훼한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은 뜨거운 논란이 됐다. 동영상을 만든 이들이 용서를 구했고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사과를 받아들였으나 종교적 배타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태초에 신이 품은 뜻, 애초에 종교가 지향한 바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에 종교비평가인 저자는 말한다.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선하지도 성스럽지도 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다. 심지어 신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라고. '신을 위한 변론'이라 하기에는 충격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나 생명 창조에 신이 필요없다고 한 스티븐 호킹 등의 논쟁거리와는 다른 접근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으나 속뜻은 '논쟁의 무의미함'을 지적한다. 즉 인간화되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신이라면, 그런 신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믿음'에 대한 집착을 파헤쳤다. 성서에 예수가 제자들의 믿음(faith)이 부족함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예수가 쓴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pistis)'로 신뢰ㆍ충실ㆍ약속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것이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고 동사로 옮겨지는 과정 중에 '피데스(fidesㆍ충실함)'로, '믿는다(I Believe)'로 바뀌었다. 그래서 특정한 삶에 대한 헌신을 뜻하던 말이 어떤 견해에 대한 믿음으로 변하게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믿음'을 비롯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앙, 신비, 교리, 말씀 등은 종교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은 근대 서구가 계몽과 과학을 발전시켜 오면서 인간의 이성(로고스)의 관점으로만 접근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초기 종교 당시의 사람들은 이성적ㆍ세속적 분석이 아니라 초월적ㆍ영적 경험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었으나 오늘날 교회들은 경전의 구절을 해석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저자는 "종교는 본래 사람들이 '생각한' 무엇이 아니라 '행한' 무엇이다"라는 말로 관념적인 종교에 대한 오해를 꼬집으며 실천과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의 우리는 간직했었으나 오늘날 현대인은 잃어버린 '실천적 수련'을 되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카렌 암스트롱은 17살에 수녀가 됐지만 융통성 없는 규율에 실망해 7년만에 환속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 후 BBC의 종교 다큐멘터리를 담당했고 종교비평가로 활동중이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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