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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성과주의의 함정


서울 강북의 A은행 지점. 창구 직원 5명 중 4명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보통 1시간 가까이 대출 상담이 이어지다 보니 지점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나머지 손님들은 다른 1명의 창구 직원이 도맡아 처리한다.

손주를 위해 예금을 하러 온 할머니부터 이사 문제로 급히 송금을 해야 하는 회사원, 공과금을 내러 온 주부까지. 은행의 '돈벌이'가 될 대출 상담을 하는 4명의 직원을 위해 다른 1명의 직원이 모든 잡무에 매달린다.

오후4시 지점 문이 닫히자 지점장이 그날의 성과를 점검한다. 대출 상담을 활발히 했던 4명의 직원들과 달리 손만 분주했던 1명의 직원은 실적이 시원치 않다. 하지만 모든 직원이 개인 성과만 생각해 대출 상담이나 펀드 판매에만 매진했다면 그 지점의 모습은 어땠을까. 한 은행원은 "고객들의 고성이 오가는 아수라장을 한번 겪어봐야 그 부작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에 성과주의를 확산하라고 채근하고 있다. 지점 단위를 벗어나 개인별 성과를 평가해 속칭 '프리라이더(공짜 승객)'를 퇴출하라는 것. 은행원들이 편히 영업하면서 고연봉을 챙겨가는 것 아니냐는 싸늘한 여론도 등에 업었다.



하지만 은행 지점의 공공적 성격까지 고려해보면 섣부른 개인 평가가 조직 분위기를 해치고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미 지점장들은 하루 단위로 줄 세우는 실적 경쟁 속에서 눈을 벌겋게 뜨고 살아간다. 그 지점 안에서 직원 개개인의 경쟁심을 유발해 성과를 높이는 것은 리더인 지점장의 몫일 수 있는 것이다. 개인 평가를 과도하게 도입할 경우 은행 안에서 다른 직원을 위해 '조연' 역할을 맡고 있는 직원들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다.

물론 수만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은행에서 프리라이더는 적지 않다. 소위 '지포부(지점장을 포기한 부점장)' 등 은행의 비효율적 인력 구조를 조롱하는 용어들이 은행 안팎에 나도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같은 문제를 뜯어고칠 방법을 찾는 것은 결국 은행과 노조의 몫이다. 의식 있는 은행 직원들의 목소리를 모아 상향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호봉제에 정년까지 보장된 공무원들이 은행을 불러놓고 가르칠 일은 아니라는 것. 최근 수년간 상당수 대기업은 개인 성과제의 폐해를 인정하고 조직 단위 성과제로 돌아서기도 했다. 민간 금융사 수장까지 역임했던 임종룡 위원장이 취임 초 부르짖던 자율성의 순기능을 외면하고 관치의 유혹에 너무 쉽게 빠져든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금융부=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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