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들을수록 구슬픈 노래 '황성 옛터'는 한국인이 최초로 작사·작곡한 대중가요다. 지난 1928년 발매될 당시 앨범에 인쇄된 곡명은 '황성의 적(발자취)'으로 이때 황성은 폐허가 된 고려 왕궁 '만월대'를 뜻한다. 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를 착실히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원천석의 시조에 나오는 그 만월대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작사자는 왕궁터를 보며 황폐해진 성(荒城)이라고 표현했겠지만 실제로는 황제가 사는 성(皇城)이었다. 고려 국왕은 자신을 황제라 칭했으며 자신이 사는 개경을 황도(皇都)라고 불렀다. 당연히 왕궁은 황성(皇城)이었다. 기개 넘친 고구려를 계승한 결과다. 만월대는 고려 이후 불리던 이름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달을 바라보기 위해 황성 안에 만든 망월대(望月臺)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왕궁의 정확만 명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월대는 고려 태조 2년인 919년 창건된 이후 거란 침입, 이자겸의 난 등을 겪으며 여러 차례 불탔고 그때마다 중건됐다. 공민왕 10년인 1361년 홍건적에 의해 소실된 뒤로는 더는 살아나지 못한 채 이제껏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고려 왕조와 흥망성쇠를 같이 한 왕궁이 어찌 사연이 없겠는가. 남북 역사학자들은 향 깊은 고려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2007년 공동으로 유물 발굴을 시작했다. 지난달 서울과 개성에서 열린 '개성 만월대 유물 특별전'은 그 결실이다. 많은 사람이 만월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서 500년 왕업의 대서사를 만끽했다.
30일에는 남북 공동 발굴단이 만월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를 발견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제작 시기가 만월대 소실 전이니까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이 인쇄된 1377년보다 최소 16년 이상 앞선다. 인걸은 간 데 없건만 그들의 남긴 찬란한 유산은 의구하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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