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데이 주간, 기쁜 마음으로 사과해요' 지난주 회사 근처의 한 초등학교를 지나다 우연히 본 플래카드에 적힌 글이다. 달콤한 맛의 사과를 좋아하던 터에 애플(apple), 사과라는 말이 두 번이나 쓰인 문장이어서 금방 눈에 들어왔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이틀 후가 애플 데이.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징표로 과일 사과를 건네자는 취지로 생긴 날이다.
10여년 전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등이 주도해 사과 향기 그윽한 시월에 둘(2)이 서로 사(4)과하고 화해한다는 의미를 담아 10월24일로 정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 교실은 '사과'를 주고받는 학생들로 왁자지껄하다. 이렇게라도 서로 위로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쁜 한편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힘들어진 세태가 씁쓸하기도 하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마음이다.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에 나오는 말로 나와 남 할 것 없이 올바름, 즉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본질은 '부끄러움(恥)'. 사회질서 유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 녹아 있다. 하지만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기는 쉬우나 내 잘못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히려 변명과 핑계로 자기 잘못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사과에 참 인색해졌다. 근래 몇 년 사이 특히 심해진 듯하다. 수오지심은커녕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넘쳐난다. 자기 잘못을 사과하고 부끄러워하기보다 되레 남 탓, 사회나 국가 탓을 하기 일쑤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 운전 실수는 그럴 수도 있는 것, 남이 잘못 운전하면 교통법규 위반' 이런 식이다.
얼마 전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아버지와 동생을 독살한 혐의로 검거된 20대의 첫 마디는 '나는 억울하다'였다. 지하주차장에서 여성을 납치해 무참히 죽인 살인자는 '나는 더 살아야 한다'고 소리 질렀다. 사과·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는 이들 흉악범뿐이 아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위 공직자, 유명 작가, 교수 등 소위 사회지도층 또한 오십보백보 수준이다. 표절 논란이 일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얼버무리고 숨어버린 베스트셀러 소설가, 거짓말과 비리가 속속 드러나자 변명으로 일관하는 외교·안보 책임자,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한 정치인·관료 등 손가락으로 꼽기도 벅찰 정도다.
일본 문학계의 거성(巨星)으로 불리는 사카구치 안고는 '타락론'에서 사회적 위기는 '집단적 타락 증후군'에서 온다고 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 저지른 범죄에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궤변으로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이를 롤모델 삼아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려 할 때 사회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고 위기를 맞게 된다는 지적이다. '나라 세금 훔친 저 높은 양반이 진짜 도둑 아니냐'며 자기가 저지른 도둑질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좀도둑처럼 말이다. 고위층은 법을 어기고도 잘사는데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사회가 병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지 않겠는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를 반성하고 바로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사과다. 고개를 숙여 전화위복의 기회를 잡은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현실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네 탓 공방에 국론 분열 위기다.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지도층의 잘못이 아니라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다. 애플 데이의 의미가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