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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돈'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용어인지는 모르겠다. 정부지원금, 경진대회 상금, 투자금 등을 포함해 부르는 표현이라고 하자. 스타트업에 목돈이 생기면 무엇부터 하고 싶을까. 내 주위의 스타트업 대표들은 함께할 사람을 채용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 계획보다 늦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사람을 채용하기 전 한두 가지 생각거리를 드려본다.
스타트업이 사람을 채용할 때는 비즈니스 모델의 검증 정도를 기준으로 할 만하다.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은 대부분 가설로 구성돼 있다. 목표고객부터 가설이다. 목표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 불편사항도 가설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솔루션도 가설이다.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지도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이 어느 정도 검증된 시점이라야 비로소 사람을 채용하고 마케팅을 늘려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예로 들어보자. 100만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였더니 1만명의 방문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치자. 이들 중 1,000명이 회원 가입을 했고 100명이 상품을 구입했으며 객당 단가가 10만원에 매출이익이 4만원이었다고 하자. 마케팅비 100만원을 들여 매출이익 400만원을 만든 것이다. 이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고 세워놓았던 비즈니스 모델에 근접한다면 이제 본격적인 투자가 필요한 때가 된다. 이때가 바로 목돈을 들여 사람을 뽑고 마케팅을 늘려야 할 시기다.
이와는 반대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는데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제품의 기능을 변경 또는 추가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회사의 몸이 무거울수록 부담이 된다. 비즈니스 모델 검증 전까지는 기업의 몸을 가볍게 하고 검증된 후부터 본격적으로 키우라고 하는 이유다.
비용 관점에서도 한번 살펴보자. 너무 계산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연봉이 3,000만원인 사람을 채용한다고 해보자. 연봉에 4대 보험, 퇴직금 및 각종 부대비용을 계산하면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연간 4,000만원은 소요될 것이다. 4,000만원을 목돈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벌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영업이익률이 20%인 회사라면 2억원의 매출을 더 올려야 이익으로 4,000만원을 벌 수 있다. 물론 손익분기점을 넘긴 후에 말이다.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않은 시점이라면 목돈에서 나가야 한다.
돈이 생기면 사람부터 뽑고 싶은 것이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마음이다. 다만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기 전까지는 최소한으로 운영하면 좋겠다. 검증이 됐다는 판단이 들 때 비로소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대한다. 사람을 뽑는 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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