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
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몇 일째 가시지 않고 있는 미세먼지로 공기가 다소 탁한 듯 했지만 답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마치 소풍가는 학생들처럼 들떠있었다. 수강생들은 강서도서관에서 마련해 준 간식과 답사기념 손수건을 매고 정동밤길에 나섰다.
강의를 맡은 박희용 박사(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100여년전의 대한문 일대에 대한 대강의 모습을 설명하며 답사를 시작했다. “광화문(경복궁)·홍화문(창경궁)·돈화문(창덕궁) 등 궁궐의 정문에는 화(化)자가 들어가는데 덕수궁은 대한문입니다. 궁궐의 정문은 대부분 남향이며 화자 돌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대한문이 처음엔 정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죠. 1912년 도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제시대에 이렇게 정문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박 박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궁궐의 담장 축조법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마치고 덕수궁길과 정동길을 따라 주한미대사관저와 구세군 역사박물관 앞에 섰다. “지금의 덕수초등학교 근처에 경성방송국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명월관 기생들이 자주 출연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세군이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때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청년들이 몰려들기도 했어요. 군대로 착각해서 벌어진 헤프닝이죠.” 수강생들은 강사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준비한 필기도구로 강의내용을 빼곡하게 정리해 나갔다.
답사팀은 이어 구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관파천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이내 모두가 진지해졌다. “정동은 우리나라 근대의 중심이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을 시작으로 1894년 동학운동, 1895년 끔찍했던 을미사변에 이어 그 다음 해에 벌어진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현장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입니다. 고종이 명성황후를 향한 일제의 무자비한 공격을 목도하면서 신변에 위험을 느껴 궁궐을 탈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었죠.”
박 박사는 아관파천을 성공리에 이끈 엄상궁에 대한 스토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고종과 잠자리를 했다는 것이 알려져 명성황후가 궁궐에서 쫓아냈던 엄상궁은 을미사변 후 궁궐로 돌아와 실질적인 국모역할을 했던 분입니다. 여장부였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엄상궁이 꾀를 내 자신의 가마에 고종을 모시고 당시 러시아공사관까지 간 것이죠. 가마에 고종을 태우고 궁궐을 탈출하기 위해 2개월간 일본 감시관들을 매수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지요.”
수강생들은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있었던 비밀통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구 러시아 공사관의 흰탑 계단을 올라 가까이에서 설명을 들었다. 그들은 마치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설명에 빠져들었다. 답사는 구 러시아 공사관에 이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유적지 원구단으로 이어지면서 계속됐다.
이날 강의에는 50대~60대 남성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도서관의 새로운 이용계층으로 중장년 남성들이 등장한 것. 이날 회사 동료를 따라 답사에 참석했다는 이모씨는 “역사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학창시절 배우지 못했던 인문학에 뒤늦게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깊이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친구의 권유에 퇴근 후 참석하게 됐다. 제겐 회사 근처 산책로에 불과했던 정동길이 역사의 현장이었다니 새롭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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