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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금융이 문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세계경제포럼(WEF)의 금융경쟁력 부문에서 한국은 전세계 87위에 그쳤다. 나이지리아(79위)나 우간다(81위)에도 뒤처진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취약 분야인 금융 부문이 (국가경쟁력) 순위 상승을 제약하고 있다"며 금융 산업 탓으로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두 달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80위권의 금융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금융 때문에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금융이 문제일까.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반박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WEF 순위는 믿을 게 못 된다. 국내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주관적 만족도 조사에 불과한 해당 설문을 가지고 금융사를 질타하는 게 되레 우습다. 이번 조사를 시행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측에서도 "기업인 대상의 조사이니 그러한 사정을 감안해달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그렇다면 왜 금융을 계속 걸고 넘어지는 걸까. 정부의 계속되는 금융 산업 때리기는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경기 불황에 대한 '책임 전가'에 가깝다. 실제 단순 예대마진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에, 전체 당기순이익에서 차지하는 해외 수익 비중이 5% 남짓에 불과하니 여타 수출기업과 비교해 지적질을 받기에 딱 좋다. 외환위기 때 투입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은 한층 명분을 더한다.
금융사들은 억울할 뿐이다.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금융지주 회장들은 연봉의 30%를 반납했고 은행 임직원들은 청년희망펀드에 너도나도 가입 중이다. 통일금융이나 기술금융이 화두가 될 때는 '코드금융'이라는 세간의 비판 속에서도 묵묵히 정부 시책을 따랐다.
무엇보다 정부의 행태는 '누워서 침 뱉기'에 가깝다. 이날 기자와 만난 한 전직 은행장은 "금융을 모르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관련 규제도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87위라는 순위가 그렇게 낮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푸념했다. 금융사에 대한 손가락질이 결국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지, 정부와 청와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금융부=양철민기자 chop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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