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악재로 휘청거리고 있는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인력 3만5,000명을 줄이고 해외법인 철수 및 자산매각으로 덩치를 줄이기로 했다. 글로벌 경제부진과 저금리, 금융규제 강화,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연루에 따른 거액의 벌금납부 등 잇따른 악재에 배당중지까지 선언했지만 실적악화에서 탈피하지 못하며 결국 제살 도려내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몸집 줄이기만으로는 은행산업의 위기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아 이 같은 구조조정의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이날 대규모 감원과 사업 부문 개편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자본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배당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은 2차 구조조정안이다.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구조조정 방안을 '가난한 역사적인 행동(poor historic behavior)'이라고 표현했다. 인력감축 대상은 정규직 9,000명, 전산직 등 외부 계약직 6,000명, 포스트방크 등 매각 대상 분야 직원 2만명 등이다. 도이체방크는 현재 정규직 10만명, 외부 계약직 3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은 0.9%, 외부 계약직은 20%가 일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특히 해고 대상 정규직 9,000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4,000명은 독일 본국 인력이다.
도이체방크는 '전략 2020'이라는 장기 구조조정 방안도 이날 발표했다. 고객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몇몇 국가의 투자은행 부문을 폐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도이체방크는 39억유로(약 41억5,000만달러, 4조7,300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 구조조정 비용으로 내년 한해에만도 30억~35억유로가 소요돼 구조조정 효과는 상당 부분 반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구조조정 방안과 함께 발표된 3·4분기 실적도 급전직하했다. 매출은 73억유로로 전년동기 대비 7% 줄었고 지난해 9,200만유로였던 순손실은 60억유로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손실이 급증한 것은 금리 담합, 자금세탁 적발에 따른 소송 비용 및 벌금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이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3·4분기에만도 12억유로의 충당금을 추가로 쌓았다. 총 충당금 규모는 48억달러로 늘었다.
도이체방크의 이번 구조조정은 유럽 금융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몸집 줄이기의 결정판이다. 유럽계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강화된 금융규제, 은행산업의 경쟁 격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다. 도이체방크에 앞서 바클레이스는 최근 투자은행 부문 사업축소에 착수했으며 크레디트스위스그룹도 지난주 수십억달러의 자금 확충과 미국·아시아 지역의 자산관리사업 부문 축소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자구계획에도 금융시장에서는 은행산업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헬무트 히퍼 유니언인베스트먼트 펀드매니저는 "자산감축과 비용절감 이후 은행들의 실적이 좋아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도이체방크 주가는 6.9% 빠졌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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