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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떠나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68년 '목선'으로 등단한 후 반세기 가까이 수백 편의 글을 써오며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김동리문학상을 수상한 그이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더 각별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소설가 고(故) 이문구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번 작품은 25년 전 '아버지'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한 번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 단편으로 쓴 작품은 20년이 넘도록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가 한 작가의 희수(77세)를 맞아 마침내 장편으로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됐다.
소설가 이문구처럼 이번 작품의 주인공 김오현의 아버지는 남로당원이었다. 남로당 골수분자였던 김오현의 아버지는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가지 못하고 빨치산이 돼 유격 투쟁을 벌이다 죽는다. 뒤이어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네 형 역시 아버지에게 숙청당한 사람의 유가족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질곡 많은 삶에서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대출까지 끌어다 시작한 장사가 망해도 물처럼 낮은 자세로 삶을 살아낸다. "있는 힘까지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열한 명의 자식을 낳은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한 작가는 "물처럼 산 한 아버지의 신화적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남과 북, 좌와 우로 나뉜 설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오현의 삶을 읽으며 작가는 독자들이 어떤 감정을 갖기 바란 것일까.
한 작가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화해일 것 같다"며 "아픔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승화돼야 하지 않겠는가. 작품에서 물 얘기를 많이 했는데 화해한다는 것은 물속에서 녹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벼운 주제는 아니지만 지난 5년의 집필 기간을 거치며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여러 번 다듬었다.
그는 "모든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 재밌게 쓰려고 했다"며 "젊은 의식을 가진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평소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한 작가는 조만간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장편으로 독자들을 찾을 계획이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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