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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서양화가' 고희동을 돌아보다

50주기 특별전… 동양화·유품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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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동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리는 춘곡 고희동(1886~1965). 그가 남긴 유화는 단 3점만 전한다. 3점 모두 '자화상'인 것을 보면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나를 아는 것, 즉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었던 것 같다.

오는 22일은 개화기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화 정규교육을 받아 근현대 화단을 이끈 고희동의 50주기다. 이날에 맞춰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재 '고희동 가옥'에서 '한국 근대화단의 선봉, 춘곡 고희동 50주기 특별전'이 개막한다. 춘곡이 서양화적 기법을 변주해 그린 동양화 38점을 비롯해 손때묻은 유품, 제자들의 작품까지 총 46점이 선보인다.

참을 수 없는 예술적 재능을 발산하기 위해 화가의 길을 택한 이들과 달리, 고희동이 190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것은 사실 '출장 업무' 때문이었다.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와 근대학문을 배운 그는 당시 왕실 관련 업무를 총괄하던 궁내부의 행정관리가 됐다. 주사급 공무원이던 그가 '미술연구' 목적으로 일본 출장을 간 것이 유학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듬해 돌아갈 나라, 조선이 없어졌다. 궁내부 출장비로 충당하던 학비는 조선총독부 유학생 관리규정에 따라 총독부 장학금으로 전환됐다. 고희동이 공무원이라는 원래 신분이 떨치고 '화가'가 되어 돌아온 것에는 이 같은 시대상황이 작용했다.



그는 아버지와 교류하던 한국화가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동양화를 배웠고, 대한제국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미술 교사로 재직한 프랑스인 레미옹이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서양화에 관심 갖게 됐다. 1915년 귀국한 고희동은 그간 다져둔 동양화 화풍에 서양화적 요소를 집어넣어 변화를 꾀했지만, 앞서 간 탓인지 당대의 호평은 얻지 못했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02)3675-3401~2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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