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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미국 유학시절에 생긴 일들-김대영 이지스자산운용 사장



미국 동부에 위치한 앰허스트대는 작고 유명한 부자 대학이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4년에 필자는 기숙사비와 학비가 모두 포함된 장학금을 받고 3학년에 편입했다. 이번에는 당시 필자가 경험했던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일화들을 들려주고자 한다.

첫 번째는 돈과 관련된 얘기다. 필자는 여름방학 동안 수화물 배송회사에서 시간당 3달러75센트를 받고 수화물을 주소별로 분류해 옮겨 놓는 일을 했다. 필자는 3주간 2,000여개의 수화물을 옮기는 동안 허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증세가 점차 악화돼 일을 포기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은 500달러였다. 그런데 허리 통증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완쾌되지 않았다. 다음 직장은 골프클럽의 고급 식당에서 웨이터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술에 만취한 노신사가 필자를 보더니 "흑인보다도 못한 망할 황인종"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몇 분 후에 노신사의 부인이 자기 남편이 취해서 실언한 것이니 용서해달라면서 300달러의 팁을 건넸다. 거절하려 했으나 부인의 완강한 간청으로 받게 됐다. 허리 통증의 대가로 받은 500달러와 욕을 먹은 대가로 받은 300달러는 내 생에 결코 잊어지지 않는 슬프고 허무한 돈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교육과 관련해 경험한 두 가지 일화이다. 하루는 서울에서 누님이 학교까지 오셔서 고급 보석함을 통계학 교수님께 선물로 드렸다. 교수님은 선물을 사절하시면서 필자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값있는 선물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참된 마음에서 나는 미국 교육의 또 다른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추석·설날 등 명절에 스승께 선물 드리는 미덕이 쑥스럽게 여겨졌다.



언어 소통이 어려웠던 유학 1년 차 성적은 C와 D로, 그 후 2년 차 성적은 B와 C로 마쳤다. 대학원 입학 신청을 해야 하는데 성적이 B와 C이므로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5개의 대학원 중 3곳에서는 거절됐고 스탠퍼드와 또 다른 대학원에서 입학은 허용되나 장학금은 불가하다는 통보가 왔다. 당시 장학금 없이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자 대학인 앰허스트의 장학금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냘픈 희망을 가지고 통계학 교수께 상의 드렸다. 그는 통계학 점수가 1년 차에 거의 낙제점수에서 2년 차에는 B-로 개선된 점을 강조하면서 필자를 학교 당국에 강력히 추천했으며 필자는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현재만이 아니고 과거에서 현재에 어떻게 도달했는가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가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교수의 행동에 존경과 감탄을 했다.

유학 시절 돈과 교육에 관해 경험한 일화들은 필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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