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법 폭력 시위를 예방한다는 취지의 '복면 시위 금지법'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폭행·폭력 등으로 치안 당국이 질서 유지를 할 수 없는 집회·시위의 경우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는 복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고 이를 거듭 위반할 경우 시위 주최자를 가중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은 복면 착용이 불법적 행위를 은폐하고 수사기관의 검거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 큰 만큼 복면 금지가 불가피하고 미국 및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복면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은 복면 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고 공권력 남용의 소지가 크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찬성-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폭력행위 위한 의도적 신분 은폐 막아야
● 폭력,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 안돼
● 미국·독일·프랑스 등 선진국 법제화
● 폭력시위 위험성 검토 선별 적용 필요
지난달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가 광화문광장 시위 불허에도 행진으로 이어지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이미 경찰은 버스로 소위 차벽을 설치했으며 이 차벽은 폴리스라인 역할을 하는 것임에도 시위대는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하다가 폭력 시위로 변했다. 일부 시위대는 마치 경찰과 충돌할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쇠 파이프와 각목, 철제 사다리, 밧줄 등을 준비해 꺼내 들었고 이 중 극히 소수는 새총까지 준비해 경찰을 공격했다. 이러다 보니 경찰도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대응했으며 광화문 일대는 한동안 아수라장이 됐다. 그런데 경찰을 공격한 일부 시위대는 복면을 하고 얼굴을 가렸다.
대규모 시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일부 폭력 시위대는 자신을 감추고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복면을 한다. 복면 뒤에 숨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서 보호하는 '익명으로 표현할 권리'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폭력일 뿐이다. 이런 폭력이 집회나 시위 끝에 나오다 보니 과격이나 폭력이라는 단어가 시위라는 표현 앞에 으레 붙게 된다. 집회나 시위가 평화로움을 상실하면 더 이상 집회나 시위가 아니고 폭력 행위일 뿐이다. 더구나 복면을 쓰고 대로변에서 경찰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폭력으로라도 관철하려는 것 같아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인지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는 모든 폭력적 지배나 행위를 배제하기 때문에 이렇게 복면으로 자신을 감추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반민주적 행위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후에도 언제부터인가 대규모 시위에서 복면을 쓰고 폭력을 휘두르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이러다 보니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자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이후 그동안 총 8건의 복면 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복면 금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은 복면도 표현의 방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번 국회에 제출된 복면 금지법안도 지난 법안들처럼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시위에서 대부분의 폭력 행위가 복면을 착용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고, 복면 착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신분 확인이 어려워 추적·검거하기가 쉽지 않아 이로 인해 폭력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0년이 넘게 복면 금지를 법제화하려고 노력해왔으나 이미 외국에서는 복면 금지를 법제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5개주에서 복면 금지를 입법해 시행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독일이나 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 등에서 복면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복면 금지를 반대하는 측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독일은 나치의 경험에 입각해 복장이나 복면 등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우려한 것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집회 현장에서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며 미국의 경우에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소수 인종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선진국이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위험성 때문이다. 어떤 행위가 위험성을 내포한다면 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복면을 한 시위대가 쇠 파이프나 각목을 휘두르며 법질서를 위반한다면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도 폭력 시위를 차단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법은 경험의 산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면 착용을 금지하게 되면 당연히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한을 받는다. 복면도 표현의 한 방식이기 때문에 무조건 금지해서는 안 된다. 폭력 집회·시위의 위험성이 있을 경우에 한해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이 최소한 제한의 원칙에 부합한다. 물론 이 경우 폭력의 가능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복면을 한 시위대가 쇠 파이프나 각목 등을 가지고 있다면 폭력 시위의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복면은 불법적 행위를 은폐하고 수사기관의 검거를 피할 목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최대한 보장돼야 하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집회와 시위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복면 착용의 제한적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대-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집회=유해' 논리, 시위의 자유 침해
● '집회실명제' 헌법이 보장한 권리 제약
● 선진국 판결과 전제조건 달라 비교 불가
● 익명 표현, 민주주의에 기여
복면 금지법은 일종의 '집회실명제'다. 집회에 참석할 때 신원의 근거가 되는 얼굴을 공개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에 위헌판정을 내린 바 있다.
국민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국가는 범죄수사와 같이 특별한 공익이 있는 경우에만 사생활 및 사적인 정보의 공개를 강제할 수 있다. 신원정보의 공개도 마찬가지다. 불심검문, 즉 경찰이 신원을 물어보는 것마저도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 어떠한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떳떳하면 왜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가'라고 다그치는 사람들도 만약 길거리 범죄를 막겠답시고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에게 명찰과 주민번호를 달고 다니도록 강제한다고 상상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길에 나가기 자체를 꺼려할 것이며 이동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될 것이다. '집회실명제' 반대자들의 심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실명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부동산실명제와 금융실명제는 사기 및 탈세의 위험성 때문이다. 자동차에 번호판을 달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의 파괴성과 이동성 때문이다. 청소년유해물을 보는 사람에게 성인 인증을 위해 휴대폰 번호 입력을 요구하는 것도 이를 청소년이 봤을 때의 유해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회는 어떤가. 자동차 운전, 금융거래, 성인물 접근처럼 위험이 내재돼 있는 행위인가. 그렇지 않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집회는 별다른 정황이 없는 한 무해한 것으로 추정돼 보호돼야 한다는 의미이며 집회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면 금지법은 스포츠·낚시·독서 등등 수많은 행위를 복면을 쓰고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유독 집회를 할 때만 복면을 쓰지 않도록 강제하므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인 제약이 된다.
집회는 헌법적으로 무해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 익명의 글쓰기는 도리어 사상의 전파라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위험'이 있더라도 보호돼왔다. 일제강점기와 군사 독재정권 시절 탄압을 피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한 수많은 익명의 글들을 보라. '폭풍의 언덕' 저자 에밀리 브론테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편견을 피하기 위해 'Ellis B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밖에도 시대의 편견과 권력의 탄압을 피해 자유로운 비평과 예술활동을 한 필명 사용자들은 몰리에르, 볼테르, 졸라, 트로츠키, 조지 오웰,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 사드 백작, 오 헨리, 조르주 상드, 심지어는 아이작 뉴턴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8월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을 선언할 때도 익명표현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집회, 즉 물리적으로 모인다고 해서 글쓰기와 다를까. 다른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옥외집회의 정의)'에 모인다는 것인데 그런 위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든 장소, 즉 공원·경기장·대중교통시설·극장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프랑스·독일 등 여러 나라에 복면집회 참가 금지법이 있지만 이에 대한 헌법적 근거는 매우 부실하다. 뉴욕주의 복면집회 참가 금지법에 대한 2001~2004년 합헌 결정은 해당 복면의 특성상 그것을 금지해도 집회참가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도리어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더욱 많은 주에서 집회참가에 복면금지 의무를 정당화할 만큼 해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위헌판정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수차례 내려졌다. 사실 이들 나라에서는 네오나치나 KKK단의 혐오표현, 니캅·부르카 등 반여성적 무슬림 인습에 대한 채무감이 작용하고 있는 바가 크다. 실제로 프랑스의 2010년 10월 합헌결정은 '여성들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자유와 평등원칙과 부합할 수 없는 열등한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 배척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판시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순전히 집회의 잠재적 위험만을 이유로 복면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