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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그리스, 유럽 골칫거리 전락
국제투명성기구 "부유층 탈세·부패가 원인"
뇌물 일상화… 2009년에만 9억유로 달해
한국 부패인식지수 55점 낙제 수준
OECD 평균 68.6점에도 한참 못 미쳐
GDP 기준 11위 경제대국 위상과 거리
그리스는 꽤 부유한 나라였다. 1929년부터 198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2%를 보였던 나름대로 경제우등국가였다. 특히 1950년부터 1973년 기간 동안 그리스 경제는 연평균 7%의 성장을 기록,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성장세를 기록했었다. 한때 실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 평균 경제성장률 2위라는 기록도 있었다. 1981년 유럽공동체(현 EU)에 가입할 때 그리스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에 불과했고 실업률도 3%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얻은 명성이 "역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나라인 그리스는 다르다." 는 말이었다.
그런 그리스가 지금 유럽의 골칫거리가 됐다. 1980년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1990년에 89%로 상승했고 2010년 초에는 140%를 넘어 지금은 170%를 웃돌고 있다. 정부지출이 높아지면서 재정적자는 1980년 3% 이하에서 2010년 15%를 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EU의 그리스 구제금융 규모는 사상 최대다. 유럽에서 잘나가던 그리스가 왜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됐을까.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있다. 방만한 복지 등으로 비롯된 재정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단일통화 사용, 트로이카(IMF·EU·유럽중앙은행)의 잘못된 처방, 특권층 및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탈세, 기업의 경쟁력 악화, 개혁 실패 등이 얘기되고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국제투명성기구의 지적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 부유층의 탈세와 부정부패가 그리스를 위기로 몰아넣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뇌물이 일상화된 그리스에서 2009년 한 해 동안 9억유로가 뇌물로 오갔다고 집계했다. 그리스의 부정부패가 어떻게 재정적자 악화의 원인이 됐는지 소개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가 관심을 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한 카페 주인은 새 식당 개점에 필요한 각종 관청의 허가를 받기 위해 뇌물로 1만유로를 공무원에게 건네야 했다. 교육과 의료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 학생들은 부실한 공교육을 보충받기 위해 학교 교사에게 별도로 돈을 내고 과외 수업을 받고 있다. 또 공공 의료기관에서도 소비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별도의 돈 봉투를 의사에게 건네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리스는 부유층의 탈세가 일반화돼 그리스 의사들이 독일 청소부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고 하니 무슨 얘기를 더할 수 있겠는가. 이런 그리스의 부정부패 상황에 비춰볼 때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는 아직 양호한 상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3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CP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 177개국 중 46위에 그쳤다. 100점 척도로 환산한 점수에서 55점을 받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68.6점)에 한참 못 미쳤고 OECD 국가 중에서는 27위로 최하위권 수준이다. 2009년 전체 39위였던 한국은 2011년 43위로 추락하면서 40위권 밖으로 밀려난 뒤, 2012년에 45위로 두 단계, 2013년에는 다시 한 단계 떨어지면서 5년 연속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GDP 기준 경제순위 11위라는 국가 위상과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언스트앤영(EY)이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부정부패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수의 응답자가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국내 경영자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예방·제어할 기업의 규정이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내부통제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부패와 경제성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부패만 해소돼도 4%의 잠재 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효과적인 내부통제는 기업의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내부통제 시스템의 구축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부통제제도에 대한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 어느 한 부서가 아닌 기업 내 임직원 모두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부통제가 일시적으로만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충분조건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 중 하나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그리스 GDP의 최소 8%인 200억유로(24조원)가 탈세와 부패로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리스가 스웨덴만큼 투명했다면 2000년 이후 10년 동안 국가재정에서 흑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와 비교할 때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OECD 중 부패인식지수가 최하위권으로 부패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 게다가 저축은행 사건, 세월호 참사, 원전비리, 국방비리 등 부정부패로 얼룩진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한 비즈니스서비스 산업의 해외직접투자(FDI)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부패요인·투명성, 지적재산권 보장 등으로 나타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연구결과다. 녹록지 않은 기업의 경쟁상황하에서 식어가는 성장동력을 다시 지피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선진국 수준의 투명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기업들의 내부통제에 대한 인식 전환에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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