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르고 급격하게 추락하는 데는 헤지펀드들을 비롯한 투기세력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기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제원유의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중질유(WTI)와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진 사이 캐나다와 멕시코, 이라크 등 세계 각지의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 가격은 이미 2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생산목표도 설정하지 못하는 등 OPEC가 카르텔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면서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이 WTI와 브렌트유 선물에 대한 매도 포지션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8일 현재 이들의 매도 포지션은 3억6,400만배럴어치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5일 WTI 가격이 40달러를 밑돈 후로 시세를 추종하는 원자재 전문 헤지 펀드들의 매도 주문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미국 정부가 금융기관의 위험투자를 제한하는 '볼커룰'을 전면 시행한 이래 투자은행이나 연기금들을 대신해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원유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며 이들 투기세력이 시장 변동폭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8월 3주 남짓 동안 20%가량 급락하던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붕괴 직후 5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반등한 데는 투기세력의 영향이 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처럼 원유시장을 투기세력이 쥐고 흔들기 시작한 가운데 이달 초 OPEC 총회 이후 헤지펀드들이 유가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굳히고 매도 포지션을 강화함에 따라 일부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 가격은 이미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멕시코산 원유 가격은 11년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28달러 수준이며 이라크는 아시아 국가들에 수출하는 원유 가격을 배럴당 25달러로 책정하고 있다. 서부캐나다산원유(WCS) 가격은 18개월 전 대비 4분의 1토막 난 배럴당 21.37달러에 거래됐다.
문제는 이렇게 유가가 폭락하자 산유국들이 조금이라도 가격이 높을 때 원유를 팔기 위해 원유 생산을 오히려 늘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아비셰크 데쉬판데 애널리스트는 많은 원유 생산자들이 유가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며 "생산자들은 현재 가격대에서라도 최대한 많이 원유를 팔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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