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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구조조정 하고 싶다면 금융위에 전권 줘라

1979년 말 박정희 대통령 유고 이후 중화학공업 집중에 따른 경제왜곡 현상이 일시에 불거졌다. 과잉·중복투자가 심각한 나머지 막대한 재정적자와 원자재 수입가격 앙등에 따른 물가불안까지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나는 고질적 물가불안의 해소요, 다른 하나는 중화학공업의 전면적 구조조정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때 행운의 경제참모를 만나게 된다. 바로 김재익 경제수석이다. 그는 철저한 시장경제의 신봉자였다. 김 수석은 중책을 맡고부터 수입개방을 서두르고 기업 간 또는 산업 간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차별 금융제도나 세제혜택을 철폐했다.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의 첫 단추는 기업 통폐합 조치였다. 최악의 가동률을 보이던 발전설비는 대우그룹으로 일원화했다. 건설중장비는 삼성·대우·현대중공업 3개사로 좁혀졌다. 해외건설 업체와 해운회사에 대한 무더기 정리도 진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 와중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초대 금융감독원장에 임명한 이헌재에게 기업 구조조정을 맡긴다. 당시 5개 시중은행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대규모 합병 등이 줄을 이었다. 기업 구조조정은 은행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현 국내 금융 시스템의 골격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도 기업 구조조정이 절박한 시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 빚은 무려 2,347조원으로 가계부채보다 심각하다. 그런데도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좀비기업 비중이 2010년 24.7%에서 올해 1·4분기 34.9%로 크게 늘었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부실기업들의 연쇄도산이 금융권 부실 확대, 나아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기업부채발(發)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우리 경제에) 부실화할 위험이 있는 한계기업이 문제"라며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은 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전두환 정부 시절의 김 수석이나 김대중 정부 때의 이헌재와 같은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부 스스로 그런 인물을 원하지 않는 듯하다.



현 정부에서 은행을 통해 구조조정을 전면 지휘해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다. 물론 임 위원장도 최근 들어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의 처지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돛단배 신세나 다름없다. 그 실례를 들어보자. 얼마 전 그가 힘들여 추진했던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가 돌연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유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고나서 나온 보도가 은행들이 설립한 부실채권 전문회사인 기존의 유암코를 확대 개편하는 것으로 후퇴했다는 내용이다.

언론에서는 한때 임 위원장이 은행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지금 은행 업계에서는 금융산업 사령탑이 금융위인지조차 헷갈린다는 푸념이 나온다. 금융위와 은행연합회 간의 갈등이 아니라 정부 내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은행연합회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왜 그랬을까. 정권 심층부가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손을 대는 순간 경제가 흔들리고 상당 기간 실업률 증대 등 사회적 고통이 밀어닥칠 것인 만큼 차라리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두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민간은행의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미온적이다. 그런 탓에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생존이 의심스런 좀비기업들에 정부 돈을 쏟아붓기만 한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정리하고 매각하는 데 적기를 놓쳐 130개 자회사를 보유한 공룡으로 변했다. 수출입은행은 조선업·해운업 침체와 함께 갑자기 늘어난 부실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국내 18개 은행 중 최하위로 밀리는 지경까지 갔다. 게다가 유암코 사태에서 보듯 정부가 금융위에 전권을 부여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전두환·김대중 정부 때는 달랐다. 이헌재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그 살벌했던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DJ는 한 번도 개인적 청탁을 하거나 정책에 대해 간섭한 적이 없었다…그가 내게 물어본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원칙에 맞는 것이오?' 그리고 '절차는 공정했나요?'였다." 김재익도 마찬가지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 수석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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