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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태극기를 갈등의 도구로?


15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국가보훈처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부터 그랬다. "서울시, '광화문광장 태극기 못 걸겠다' 최종 통보." '누가 감히 태극기를 부정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정작 내용은 달랐다. 보훈처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으나 영구적이냐 한시적이냐를 놓고 견해가 달라 진전이 안 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보도자료의 제목부터 거품을 넣었던 보훈처는 "양해각서(MOU)에는 시기를 규정하는 어떤 문구도 없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서울시가 약속을 깼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을 접지 않았다. "누구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인가, 보훈처인가"라는 추가 질문에는 "국민과의 약속이겠죠"라는 즉답이 나왔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보훈처=국민'이라니.

보훈처의 사고방식은 오만하다 못해 무모하다. '짐이 곧 국가'라는 발상이 떠오른다. 자유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치고 도심 한복판에 대형 국기를 내거는 나라가 없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보훈처의 태극기 게양대 영구 설치안에 찬동할 수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정부 중앙부처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보훈이라는 단어는 무한한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발전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현대경영학의 스승격인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미국 지식사회가 갖는 원동력을 보훈체계(제대군인원호법)로 꼽았다. 우리의 보훈이 그런가. 구린내 진동하는 향군 비리에는 대응하지 못하면서 시민단체 편향지원 논란에 휩싸인 보훈처가 불신과 오해, 갈등을 야기할 사안에는 왜 이리도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하는지….



한민구 국방장관이 하루 전 전국지휘관회의에서 가장 강조한 게 '신뢰'다. 보훈처가 이러고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다. 보훈처 의견과 다르면 빨간 색칠이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태극기 역시 보훈처가 독점하는 게 아니다. 국기의 크기로 애국심을 잰다면 광복절을 맞아 수많은 시민의 손으로 제작한 서울시의 초대형 태극기는 '울트라 애국심의 상징'이다. 보훈처는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고 정부와 대통령에도 누를 끼쳤다. 대통령이 강조한 '갈등과 분열 넘어 미래로 통일로'라는 정부 구호가 무색하다.

/권홍우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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