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부 소속의 한 검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새만금 방수제 동진 3공구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공사를 따낸 SK건설에 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게 주요 내용. 하지만 SK건설을 검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이 조사결과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검사는 곧바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상부에 건의했다.
고발요청권은 검찰총장 명의로 공정위에 위법업체를 고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규정으로 1996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명문화했지만 그동안 행사된 적이 없었다. 검사의 건의 직후 검찰은 규정이 생긴 지 20년 만에 검찰총장 고발요청권 행사를 결정했다. 아울러 고발요청을 건의한 검사에게 사건을 배정했다.
매의 눈으로 공정위 조사결과를 지켜보던 이는 김윤후(43·사법연수원 32기·사진) 검사였다. 김 검사는 "낙찰 규모가 1,000억 원을 웃도는 데다 다른 업체와의 수사 형평성을 고려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정작 수사에 돌입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촉박했다. 남은 공소시효는 한 달 보름 남짓.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김 검사는 새만금 사건의 참여 업체들이 4대강 공사업체와 대부분 겹친다는 점에 착안해 검찰의 과거 4대강 수사 기록을 찾아 읽어 내려갔다. 총 56권으로 10박스 분량이었다. 과거 진술과 정황을 대조해나가자 실마리가 풀렸다.
결국 법원은 "진술과 증거를 종합하면 공소 사실이 충분히 증명된다"고 SK건설에 유죄를 선고했다.
김 검사는 사건 판결이 나던 7월 공정거래 분야의 공인 전문검사(블루벨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공정거래 수사에서 최고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다. 현재 이 분야 블루벨트는 전체 2,000여 명의 검사 가운데 단 3명뿐이다.
김 검사는 2012년 이후 20건 안팎의 공정거래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철강업계의 아연도강판 가격 담합이나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 지하철 9호선 919공구 입찰 담합, 남양유업의 이른바 갑질 사건 등이 포함돼 있다. 남양유업 사건은 애초 피고소인 1~2명 규모로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180여 명을 조사하는 대규모 사건으로 커졌다. 당시 수사팀은 총 28명을 기소해 대표이사 등의 금고형을 이끌어냈다.
김 검사는 "불공정거래 범죄, 특히 담합은 시장의 경쟁 효과를 해친다는 점에서 국가 전체의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며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공정거래법을 경제 기본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검사가 불공정거래 사건에 집중하는 이유도 공정거래의 중요성을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변호사로 출발했다가 검사로 전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법무법인에서는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자문을 담당했다. 당시 공정거래법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깨닫고 서울대 전문분야 법학연구과정을 밟는 등 관련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후 2006년 검찰이 전문분야 검사를 임용할 때 공직에 들어섰다.
김 검사는 "담합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몫을 기업들이 가져가는 것인데, 횡령이나 배임 등 다른 기업 범죄와 달리 담합은 피해 범위와 규모가 특정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가격조정을 해도 소비자가 알 수 없으니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공정위와의 협력과 소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검찰과 공정위가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업체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 등을 수시로 논의한다"며 "공정거래법의 집행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두 기관의 실질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 검사는 담합의 형량 조정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일부 기업은 처벌에 따른 비용이나 과징금보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보고 담합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미국은 담합 사건에 징역 10년 이하를, 캐나다는 징역 14년 이하를 내릴 수 있지만 국내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이 처벌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새만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저지른 범행 정도가 중하고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서도 처벌 기준에 따라 8,0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김 검사는 "자국에 영향이 있다면 해외에서 일어난 담합까지 처벌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며 "담합을 예방하고 억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기업의 해외 경쟁력 유지에도 도움된다"고 강조했다.
/김흥록기자 rok@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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