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마션’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희망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과 모든 걸 쉽게 포기하는 사람.
지난달 8일 개봉한 영화 ‘마션’이 한 달 가량 지났지만 인기몰이가 여전하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고 질문한다면 ‘생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가를 잘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연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초반부 그의 대사가 가슴에 꽂혔다.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찌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 영화를 관람하기 전 이 부분을 주인공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궁금했었다. 재난 영화 중에는 ‘폐허가 돼버린 지구상에 나 혼자 남는다면’ 이란 가정을 토대로 그려낸 작품들이 종종 있었지만 ‘마션’은 미지의 행성인 화성,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곳을 배경으로 했으니 공허함의 강도가 몇 곱절은 더 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살아야겠다는 의지,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생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주인공에게 감상에 젖을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와트니는 물리적으로 31일간만 생존할 수 있는 화성에서 구조선이 올 때까지 견뎌야 하는 악조건에 놓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식물학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본인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시도다. 이런 와트니의 문제 해결 능력은 상황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프레이밍(framing)’에서 나왔다. 자신이 과학자로서 우주에 도전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탐험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내재적 동기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그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서의 모습도 보여 준다. 기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기본 소양을 활용하는 등 비전문영역에서도 역시 탐험정신을 잃지 않는다. 탐험가의 기본은 항상 변수가 존재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당황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절망에서 빠져나와 희망을 찾아내는 의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극 중 와트니의 정신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가슴을 쿵쿵 울린다.
‘마션’을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역시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이다. 동시에 가장 훌륭한 우군도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의 경쟁 사회 자체가 화성보다도 더 치열하고 격렬한 것은 아닌지, 그 속에서 와트니와 같은 의지와 희망이 절실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본다. 배경만 지구로 바뀌었을 뿐 우리는 모두가 또 하나의 ‘와트니’다. 생에 대한 갈망, 의지 없이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뻔한 사실이지만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건 그만큼 우리 모두 약해진 의지에 불을 당겨줄 촉매제가 필요하다는 방증은 아닐지.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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