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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29> ‘유니콘 감별법’부터 만들자





유니콘 기업이라는 말이 있다. 만들어진 지 10여 년이 안 된 기업 중 금융 시장 가치가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회사들이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들이 그렇다. 이들은 처음 시장에 상장될 때에는 ‘걔네 누구야’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언론이나 학계에서 중요한 성공사례로 이야기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지니게 됐다. 그렇다고 이들이 순탄한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에어비앤비 같은 경우에는 빈집을 빌려주는 주인이 손님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등 부작용이 꽤 있었다. 우버 역시 우리나라에서 불법 영업 논란으로 적지 않은 잡음을 냈다. 그러나 이런저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유니콘’ 기업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소문’의 힘이다. 지금보다 미래가 더 위대할 것이라는 시장의 신화적 믿음에 기초한 소문. 향후 산업의 판도를 바꿔 놓을만한 선풍적인 기술, 아이폰이나 페이스북처럼 상품이나 서비스의 이름이 시장의 범주를 정의할 것이고 앞으로도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 믿는 것이다. 유니콘 기업의 시초는 아마존이다. 닷컴 경제 시절부터 구축된 어마어마한 고객 기반, 기술 및 물류 인프라 등으로 회계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금융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벤처캐피탈 카우보이벤처스 설립자인 에일린 리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유니콘 기업이 미국에만 6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중국, 인도, 싱가포르에도 유니콘은 있고, 한국에선 쿠팡과 옐로 모바일이 그 범주에 들었다.

얼마 전 미국에선 바이오 분야에서 눈길을 끌 만한 유니콘이 큰 소동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헤르페스에서 암 까지, 혈액 한 방울이면 질병 진단이 가능한 키트를 개발했다는 테라노스 얘기다. 대학교도 중퇴하고 창업했던 엘리자베스 홈스는 금세 스타덤에 올랐다. 신비로운 채혈용기 ‘나노테이너’는 수많은 미국 기업인들 뿐만 아니라 전직 정치인들까지 테라노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단연 화제였다. 그러던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약국 체인 월그린은 테라노스가 보유한 기술에 대해 상용화 가능성이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뉴욕 주 보건부는 테라노스를 고소했는데, 질병 진단 방법을 테스트하기 위한 몇몇 실험이 조작됐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공연히 내놓은 검사 결과는 테라노스 기기가 아니라 지멘스나 타사 제품으로 도출된 결과라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홈스는 자신들의 ‘연구 보고’를 공식 저널에 발표, 연구자들의 블라인드 리뷰(peer review) 절차를 통해 공정성 및 타당성을 검증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냉담해진 여론이 테라노스의 편일지는 미지수다.



‘유니콘’은 단어에서부터 불안감과 모호함이 묻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들은 장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익모델보다도 기술력과 여론몰이만으로 그 지위에 오른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유니콘이 말만 번드르르 하지 허상에 지나지 않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만약 파괴적인 영향력을 지닌 기성 기업이 해당 사업에 관심을 갖고, 조금만 집중투자를 하면 금세 무너질 회사들이 현실 속에서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일견 수긍이 가는 시각이긴 하다.

한 때 ‘벤처 거품’의 진통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유니콘의 허상’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열풍이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면에서 미국의 ‘테라노스’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떤 사기꾼이 국가의 지원을 받고 거품을 일으킬지, 아니 이미 거품에 올라타 있는 짝퉁 유니콘이 넘쳐나고 있는건 아닌지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수한 벤처들을 검증하는 공무원들이나 기업인들은 전문성과 공정한 안목을 갖춰야 한다. 나라의 공복(公僕)으로서 높은 도덕성과 소명의식을 스스로 다져야 할 시점이다. 지금같이 공무원들이 각자의 성과를 내기 바빠서 지원 대상이 보유한 기술력과 자원이 정말 가치 있는지 제대로 검증해내지 못한다면 그 손실은 사회 전체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미국처럼 벤처와 스타트업 지원 역사가 오래되고 체계적 평가가 이뤄지는 곳에서도 유니콘 가리기가 이토록 힘들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빨리빨리만 외치다 ‘유니콘의 탈을 쓴 노새나 망아지’만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짝퉁 유니콘’에게 정부와 국민이 뒤통수를 맞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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