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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중> 심해지는 여가 양극화

"돈 벌기 바빠" 저소득층에 취미=사치… '여가도 소외' 박탈감 커져


"경제부담 탓 취미 없다"

비정규직·자영업자 등 공연 한편 보기 어려운데

고소득층 과시형 소비

문화할인·이용권 지원… 소외계층 관심 늘려야


과거 고도성장의 개발연대에는 모두 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현재는 분명 달라졌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면서 우리 국민들은 재충전과 자아실현을 위해 여유 있는 삶을 원하고 있다. 대기업에 주5일제가 완전히 정착되면서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의 절대적 노동시간은 분명히 줄었다. 평균 급여도 꾸준히 상승했다. 휴가철 때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인파로 공항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을 보면 여가문화가 사뭇 달라졌음이 잘 드러난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다. 기능·생산·노무직으로 대표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여전히 옛날만큼 오래 일하는데 급여 수준 또한 게걸음이다. 급여 수준을 따질 때가 아니라 상당수가 비정규직인 이들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자리 지키기도 급급하다. 이들은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비용이 부담돼 취미 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즐길 시간조차 없는데 고소득 직장인은 여유까지 챙기는 상황이다. 여가의 양극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취미, 저소득층에게는 여전한 사치=취미 생활에는 돈이 든다.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처럼 저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식을 한다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가족들과 영화 한 편 보려고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의식주 활동처럼 삶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취미 활동은 그렇게 뒷전으로 미뤄진다. 서울경제신문의 조사에서 현재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사람들의 약 30%가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을 이유로 꼽은 점도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안타까운 점은 벌이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일에 매달리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여가조차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총근로시간과 총소득은 업종별로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생산직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이른바 '화이트칼라' 종사자보다 근무시간은 긴 반면 급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례로 금융 및 보험업 종사자들의 경우 월평균 160.1시간을 근무하고 610만여원의 급여를 받은 데 반해 운수업 종사자들은 월평균 175시간 일하고 393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광업 역시 30~99인 규모의 중소기업 사업장 기준으로 살펴보면 월 근로시간이 200.4시간에 달했지만 급여 수준은 340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경기 불황으로 최악의 상황을 보내고 있는 수백만 자영업자들은 별다른 휴일조차 없이 일하고 있다.



◇여가 양극화에 상대적 박탈감 커져=실제로 소득별 여가비용은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월평균 오락·문화비 지출액은 2005년 10만1,168원에서 지난해 14만6,814원으로 4만5,646원(45.1%) 상승했다. 특히 동기간 소득 중간층이라 할 수 있는 2·3·4분위 계층의 지출이 많아져 각각 51~56%의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소득 1분위에 속하는 하위 20% 사람들의 오락·문화비 지출액은 월 4만313원에서 5만3,560원으로 1만3,247원(32.8%) 오르는 데 그쳤다. 소득 최상위층의 2005년 오락·문화 지출비는 1분위 계층의 4배 수준이었지만 10여년이 지난 2014년 그 간격이 5배로 벌어졌다.

더불어 요즘의 문화는 여가 소외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커지게 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문화가 뿌리내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부산시는 지난 10월24일 열린 '부산불꽃축제'에서 위치와 테이블 여부에 따라 각각 7만원, 10만원으로 책정한 유료 좌석을 판매하며 논란을 빚었다. 과거에는 일찍 오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유료 좌석 구매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셈이 됐다. 부산시는 유료화 정책으로 5억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지만 공공기관이 좋은 자리를 소외계층에 양보하지는 못할망정 돈 버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보란 듯이 여행 사진이나 '먹방' 등을 올리는 '과시형 소비' '과시형 여가'가 늘고 있는 점도 여가 소외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 늘려야=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 여가 소외계층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요구는 꾸준히 있어왔다. 정부도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5년부터 시범 운영해 이제는 완전히 자리 잡은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이 대표적 사례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1인당 연간 5만원을 문화생활에 이용하도록 지원해주는 이 정책에 현재 185만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문화예술 관람 횟수가 전체 관람 횟수 평균과 비교해 2008년에는 9배까지 차이가 났는데 2012년에는 3배, 2014년에는 2.5배 차이가 나는 식으로 격차를 줄이고 있다"며 "문화카드 사용이 원활해지면서 저소득계층의 문화서비스 지출 증가를 견인한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1인당 연간 5만원이라는 금액이 요즘 실정과 맞지 않게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실제 이용권 발급자들의 지출은 그나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구입(45.2%)이나 영화관람(32.6%)에 집중돼 있다. 공연 한 편 보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무작정 예산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정부의 직접 현금성 지원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영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융합연구실장은 "여가나 문화적 수혜 등에서 가장 소외되고 있는 것은 사실 소득 2분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차상위계층인데 이분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보조금을 늘리는 접근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할인 프로그램 개발이나 기업·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등을 통해 사회적 배려를 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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