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격언이 있다. 미국의 12월 금리인상 가능성과 중국 경기 침체 등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의 루피화가 투자자들에게 "악천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브라질과 러시아 등 신흥국들이 유가 하락으로 침체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인도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가진 까닭에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펀더멘털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루피화가 글로벌 경제의 변동성 심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산이라는 점은 지표를 통해 증명된다. 지난 9월은 16~17일 열렸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중국발 증시불안으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주요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던 때였다. 브라질 헤알화가 이 기간 6% 폭락하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터키 리라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가 모두 3%가 넘는 가치하락을 겪었다. 하지만 루피화만은 예외였다. 1.4%나 가치가 뛰면서 다른 신흥시장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으로서의 루피화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신흥시장에서만 40억 달러(4조 5,504억 원)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영국 런던 소재 GAM 투자회사의 캐롤라인 골만 투자전문가는 "대외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도 루피화는 다른 신흥시장 통화와 다른 확실한 안전자산"이라며 "글로벌 경제에 중국 경기불안과 같은 악재가 닥쳤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호주 최대 투자은행 맥쿼리의 니잠 이드리스 수석전략가도 "인도 루피화는 강한 펀더멘털을 갖고 있다"며 "이머징 마켓이 위기를 겪을 때 투자자들은 앞으로 더 루피화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이 고공행진하고 있다는 점도 루피화의 미래를 밝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3%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3·4분기 경제성장률이 6%대로 주저앉은 중국을 추월했다.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 홀딩스는 인도의 올해 회계연도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0.9%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는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라고 밝혔다. 재정 안정성 측면에서도 인도 경제가 루피화의 자산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루피화의 가치를 언급하면서 인도중앙은행(RBI)의 역할에 주목했다. RBI는 올해 들어 8.0%였던 기준금리를 9월까지 6.75%로 낮추면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 소재 선글로벌투자회사의 제이 마라화 투자전문가는 "RBI의 통화정책은 이제까지 매우 성공적"이라며 "루피화의 안전성이 투자자들을 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안전자산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통화가치 상승이 느리다는 단점도 있다. 불확실성이 해소돼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빠르게 회복될 때는 루피화의 가치 상승 속도가 부진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골만 투자전문가도 "신흥국 시장의 통화가 랠리를 시작할 때 인도 루피화의 속도는 느린 편"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도 루피화의 이러한 측면을 투자자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경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일 때는 루피화를 팔고, 반대로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는 루피화를 사는 방식으로 포토폴리오를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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