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바르토메우 마리(49) 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이하 MACBA) 관장이 거론되는 데 대해 미술인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미술인들은 12일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고 마리 전 관장이 MACBA 재직 당시 검열을 통해 관장으로서 부적절하고 비윤리적 처신을 했다며 그의 ‘검열 문제’를 비판하는 각 국의 보도가 국제 예술 현장에 널리 알려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관장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문제는 예술에 대한 검열과 지켜지지 않는 근본적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마리 전 관장의 선임을 우려하는 미술인들의 서명은 하루 만에 400명을 넘겼고 11일 현재 500명이 동참했다. 여기에는 지난 5월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공성훈, 노순택과 에르메스미술상 수상자인 박찬경,양아치,구동희 등 국내외 활동이 두드러진 작가들이 다수 동참했다. 미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개 중인 이번 단체행동은 페이스북(facebook.com/artist.solidarity) 등 SNS를 통해 확산되는 중이다.
이들은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 사전 검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전에서의 홍성담 작품 철거 등 다수의 심각한 검열의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며 “전문성과 자율성, 현장성이라는 근본적 원칙이 행정 위주의 관료주의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미술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가) 자격기준에 엄격하다면 예술의 자율성을 확고히 지켜야할 미술관장직으로 왜 하필 아직 ‘검열 논란’의 와중에 있는 인물을 선임하려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더불어 후보자 마리 전 관장을 향해 논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마리 전 관장은 재직 당시 기획한 ‘야수와 군주’ 전시에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과 볼리비아의 노동운동가 도미틸라 충가라가 개와 함께 뒤엉켜 성행위를 하는 모습의 조각(사진)이 출품된 것을 두고 작품을 전시에서 빼려다가 아예 전시 자체를 취소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스페인 미술계는 예술과 권력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을 관장의 검열에 의해 공개하지 않았다며 반발했고 결국 전시는 개막 예정일보다 3일 늦게 개막했다. 마리 전 관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술관에 사표를 제출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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