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서울에서 휘트니비엔날레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비엔날레는 전시 이전에 담론의 장(場)인 만큼 꼭 뉴욕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혹은 전시가 아닌 전혀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나 레지던시, 교류프로그램 등 미국과 한국의 현대미술의 협력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휘트니비엔날레가 한국에서 또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아담 와인버그(61·사진) 휘트니미술관 관장이 12일 밝혔다. 이날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와인버그 관장은 “1993년에 고(故) 백남준과 손잡고 서울에서 휘트니비엔날레가 열린 적 있듯 휘트니가 미국현대미술로 특화했지만 미국이라는 국경 안에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할 가능성을 찾고 있다”며 “한국인이지만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일본인과 결혼한 백남준이 플럭서스(Fluxus·반예술적 전위운동)라는 국제적 예술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멀티 컬처’와 ‘믹싱 컬처’에서 더 풍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2017년 봄 열리는 휘트니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아시아 혈통인 크리스토퍼 이 류, 미아 록을 선정한 것도 다문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휘트니미술관의 의지로 읽힌다. 2년에 한번 씩 열리는 휘트니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현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가 되어 온 행사로, 93년 서울에서 휘트니비엔날레가 열린 이후 한국현대미술이 급격히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방한 동안 한국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접한 와인버그 관장은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이자 뉴욕에서 활동했던 김환기를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는데 작품 세계가 아주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며 “설치작가 서도호의 부친으로만 알았던 서세옥 작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를 보고서는 서예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세계와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닮은 듯 다른 부분이 있음을 발견해 흥미로웠다”고 언급했다. 동행한 도나 데살보 휘트니미술관 총괄부관장은 “국경과 장벽을 뛰어넘은 소통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할 때 시각언어(Visual Language)를 이용하는 미술은 특히 뛰어나다”라며 “작가의 국적보다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한 만큼 국경을 구분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1930년에 개관한 휘트니미술관은 1954년 모마(MoMA)와 구겐하임 등 주요 미술관이 밀집한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로 이전해 60여년간 미국현대미술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지난 5월 허드슨 강변으로 이전해 재개관 했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탁 트인 구조의 미술관은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6개월 여 만에 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화물 철길이던 곳을 공원으로 조성한 ‘하이라인 파크’와 이어지는 휘트니미술관은 한때 정육점이 즐비해 동네 이름도 ‘미트패킹’으로 붙은 이 첨단 패션의 힙합 거리를 단숨에 문화중심지로 끌어올리며 ‘도시 재생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을 방문한 사람에게 자유의 여신상과 허드슨 강을 바라보면서 미국의 예술을 만나는 우리 미술관이야 말로 ‘여기가 미국임을 느끼게 하는 곳’이 아닐까요. 미국인들에게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를 자부심 갖고 볼 수 있게 하는 곳이고요. 지금 프랭크 스텔라의 전시가 한창인데, 강철로 만들어진 그 작품 너머로 뉴욕의 도심이 같이 보이면서 뉴욕의 산업화·도시화의 맥락을 동시에 생각하게 합니다. 그게 바로 예술이죠.”
/조상인기자 ccsi@sed.co.kr·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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