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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36> '별들의 축제'





영화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신들의 어려운 현실에 장탄식을 늘어놓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과거 영화감독이나 배우 하면 예술가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얼마 전 있었던 대종상 사태다. 지난 11월 20일 열렸던 제 52회 대종상 영화제는 시작도 전부터 대리수상 불가 방침 및 유료투표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대거 개인적인 촬영 일정 등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대리 수상을 시키거나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각 부문 후보자들을 나열해놓고 참석과 불참을 별도로 표시하며 ‘소신 있는 영화인’이 누구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비꼬기도 했다. 저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수상 불가 원칙을 공표한 주최 측도 문제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가장 이름이 있는 행사 중 하나인데 초청받아 놓고 오지 않는 배우들의 태도도 오만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같은 논란 덕에 지난 26일 열린 제 36회 청룡영화상은 유독 돋보였다. 수상 여부와는 관계없이 수많은 스타들이 자리를 빛냈고, 흥행 혹은 이슈성에만 매몰 되지 않고 고루 상을 나눠 줌으로써 다양성을 살리려 노력했다는 평가다. 몰아주기나 나눠주기나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의 본래 의미인 ‘축제’에 가까운 건 이견의 여지없이 청룡영화제였다. 상을 받는다는 건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업계가, 그리고 사회가 전문가로서 존재 의미를 인정해 준 것이기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을 주는 사람이 ‘갑’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권위를 세우려다 되려 큰 코 다친 올해 대종상의 초라한 모습을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요즘 영화계는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일류 감독과 일류 배우가 만나 결성한 ‘프로젝트 조직’(project organization)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궁합이 얼마나 잘 맞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품의 성공이 좌우됐다. 그러나 요즘은 배급사 또는 제작사가 어떻게 전략을 잘 짰느냐가 더 중요하다. 처음 개봉관 수가 영화가 박스 오피스 안에서 자리를 지킬지 여부를 좌우하는 건 물론이고, 성수기/비수기도 매우 기민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글로벌 대작 영화 일정과 너무 가까워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영화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을 때 상품을 출시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적절한 전략적 판단을 누가 하게 되는가? 다름아닌 ‘회사’다. 단순히 영화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방송 등으로 수직계열화되고 있는 거대 미디어 그룹들이 일종의 구조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영화 콘텐츠가 상품화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예술적 비평은 삼가자. 어쨌거나 현실이 그런 거니까.



이런 구조 속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영화 소비자들의 마음이다. 개별 상품을 선택하는 그들의 선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제작자나 출연자들이 훌륭한 마인드와 자세를 갖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그 가치를 어떻게 인정받느냐가 더 성공을 좌우하는 시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각종 시상제도는 물론 관객들의 선호를 비껴갈 수는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업계 내부의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인정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적임자를 판별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안목’이 매우 영향력있는 변수일 테니까.

좀 뻔한 이야기지만 요즘은 소셜 미디어 시대다. 평범한 사람이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남겨도 금세 시장의 조류를 만들 수 있고, 그 세를 바탕으로 잊혀졌던 스타가 재조명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여론을 읽어낼 수 있는 기업, 그것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이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오랫동안 문화예술적 정체성으로 자부해 온 영화상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민심도 중요하니까.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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