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위안화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 편입을 등에 업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세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의 견제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위안화 대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2일 중국신문망 등에 따르면 전일 베이징에서 열린 유럽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진리췬 초대 AIIB 총재는 "AIIB 대출은 편의성 때문에 달러가 주를 이루겠지만 필요에 따라 위안화를 포함한 다른 통화 대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 이후 AIIB가 위안화 사용을 확대할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것이다. 내년 2ㆍ4분기 이후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는 AIIB는 첫해 15억~20억달러를 아시아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며 5~6년 후에는 이 규모를 100억~150억달러로 늘릴 예정이다.
진 총재는 이와 함께 AIIB와 경쟁관계인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국제금융기관과 협조융자에 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AIIB의 우선 프로젝트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30개국 정도가 추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자본금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57개국인 AIIB 회원국이 최종 100여개국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진 총재는 "AIIB는 중국 은행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26.06%의 지분율을 가졌지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자유로운 사용에 제약을 받아온 위안화가 SDR 바스켓 편입을 계기로 AIIB는 물론 중국이 추진 중인 다른 경제통합 프로젝트 통화로 용도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은 위안화를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화폐로 만들 방침이다. 물류망을 중심으로 6개 경제회랑을 건설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 내 2,200억달러를 포함해 8,000억달러가 소요되는 만큼 여기에 위안화가 투입된다면 중국의 목표인 위안화 국제화가 훨씬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난 7월 상하이에서 출범한 자본금 1,000억달러의 브릭스(BRICS) 신개발은행, 내년에 출범하는 400억달러 규모의 실크로드기금도 위안화 사용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WSJ는 "중국은 AIIB와 일대일로의 연계개발을 통해 내년부터 투자와 금융지원이 포괄된 본격적인 인프라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주요 투자·결제수단으로 위안화의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품선물시장 개설을 통한 위안화 자산시장 확대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그동안 금융시장 불안으로 미뤄진 상하이 위안화표시 국제 원유선물거래시장을 내년에 열고 다른 원자재선물시장 개설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처라는 지위를 활용해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국제원자재시장 가격결정권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은 중국에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자신감을 주고 있다"며 "AIIB·일대일로 등 중국 주도의 인프라 투자뿐 아니라 상품시장에서도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김현수특파원 h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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