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조종사(Pilot of Century)'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10일(현지시간) 타계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를 지칭했던 말이다. 독일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자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인물로 꼽히며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슈미트 전 총리가 이날 96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그는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의 초석을 닦은 '위대한 유럽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슈미트 전 총리는 혹독했던 냉전기(1974~1982년) 서독 총리로 경제 위기와 1970년대 오일쇼크 등을 극복하며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다진 지도자로 꼽힌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슈미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지난 1990년 통일까지 독일을 이끈 6명의 총리 중 독일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가장 훌륭한 정치가로 꼽히는 리더"라고 평가했다.
유럽이 사랑한 정치인 슈미트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전 유럽이 슬픔에 빠져들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슈미트 전 총리는 '하나의 정치 기관(a political institution)' 자체"라며 "국제사회에서 그의 영향력은 아직 유효하다"고 그를 추모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위대한 유럽인이 숨졌다"며 "고인은 마지막까지 유럽에서 독일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역설한 인물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슈미트는 유럽이 세계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공고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유럽 질서 형성에 대한 그의 공헌을 높게 평가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소속인 슈미트 전 총리는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 또 중동발 석유파동 경제 위기를 극복하며 독일의 현대적 시스템을 정비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집권 기간 동안 전 세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에 맞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독·프 정상 협력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고 노력해 크게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당시 독·프 정상의 협력 틀이 유럽 통합을 이끈 초석이 됐으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국 정상 협력 틀의 기본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정치권에서 물러난 뒤에는 주간지 '디 차이트'의 발행인으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를 통해 독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그는 골초 정치인으로도 유명해 담배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총리 재직 시에도 정상회담이나 기자회견에 거의 빠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등장했으며 90세를 넘어서도 쉴새 없이 담배를 피웠다. 독일 국민은 그동안 슈미트 전 총리의 흡연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4월 흡연이 허용된 TV 인터뷰에서 1시간 남짓한 방송 시간 동안 담배 10개비를 피워 화제가 된 바 있다. 독일에서 금연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co.kr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10일(현지시간) 타계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를 지칭했던 말이다. 독일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자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인물로 꼽히며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슈미트 전 총리가 이날 96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그는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의 초석을 닦은 '위대한 유럽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슈미트 전 총리는 혹독했던 냉전기(1974~1982년) 서독 총리로 경제 위기와 1970년대 오일쇼크 등을 극복하며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다진 지도자로 꼽힌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슈미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지난 1990년 통일까지 독일을 이끈 6명의 총리 중 독일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가장 훌륭한 정치가로 꼽히는 리더"라고 평가했다.
유럽이 사랑한 정치인 슈미트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전 유럽이 슬픔에 빠져들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슈미트 전 총리는 '하나의 정치 기관(a political institution)' 자체"라며 "국제사회에서 그의 영향력은 아직 유효하다"고 그를 추모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위대한 유럽인이 숨졌다"며 "고인은 마지막까지 유럽에서 독일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역설한 인물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슈미트는 유럽이 세계무대에서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공고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유럽 질서 형성에 대한 그의 공헌을 높게 평가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소속인 슈미트 전 총리는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 또 중동발 석유파동 경제 위기를 극복하며 독일의 현대적 시스템을 정비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집권 기간 동안 전 세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에 맞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독·프 정상 협력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고 노력해 크게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당시 독·프 정상의 협력 틀이 유럽 통합을 이끈 초석이 됐으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국 정상 협력 틀의 기본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정치권에서 물러난 뒤에는 주간지 '디 차이트'의 발행인으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를 통해 독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그는 골초 정치인으로도 유명해 담배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총리 재직 시에도 정상회담이나 기자회견에 거의 빠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등장했으며 90세를 넘어서도 쉴새 없이 담배를 피웠다. 독일 국민은 그동안 슈미트 전 총리의 흡연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4월 흡연이 허용된 TV 인터뷰에서 1시간 남짓한 방송 시간 동안 담배 10개비를 피워 화제가 된 바 있다. 독일에서 금연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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